(上) ‘美와 국교정상화’ 기대와 우려
쿠바 아바나 상업지역인 베다도에 위치한 ‘쿠바 내셔널 호텔’ 1층 전시실 겸 바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이 호텔에 투숙했던 세계 지도자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1930년대 개관한 이 호텔은 국빈급 인사들의 숙소로 유명하다.
쿠바 아바나 상업지역인 베다도에 위치한 ‘쿠바 내셔널 호텔’ 1층 전시실 겸 바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이 호텔에 투숙했던 세계 지도자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1930년대 개관한 이 호텔은 국빈급 인사들의 숙소로 유명하다.


5년전 자영업 허용조치가 ‘자본에 문호 개방’ 신호탄
‘성조기 반바지’ 택시기사 외국인 앞에서 포즈 취해
외국자본이 토지잠식 우려… 영세업자 기반 흔들릴 수도


12일 오후 6시 쿠바 수도 아바나의 관광지인 구시가지 근처 수공예품 판매 창고 앞. 성조기가 그려진 반바지를 입은 남성이 “택시”를 외치며 관광객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수공예품 판매 창고는 구시가지 근처 곳곳에서 행상 판매하던 사람들을 정부가 한곳에 모아 장사하도록 규정한 곳으로, 오후 6시가 되면 다른 모든 국영 상점들이 그렇듯 문을 닫아야 한다. 성조기 반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모델 자세까지 취한 남성은 쿠바인 택시기사였다. 현재 쿠바는 상점 개폐 시간까지도 정할 정도로 정부의 엄격한 통제가 존재하는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성조기로 자신을 꾸미고 주로 미국인 관광객에게 ‘어필’하려는 국민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나라기도 하다.

◇대다수의 쿠바인에겐 아직 체감도 낮아…‘독이 든 성배’라는 의견도

12일 쿠바 아바나의 관광지인 구시가지 근처 수공예품 판매 창고 앞에서 성조기가 그려진 반바지를 입은 한 쿠바인 택시기사가 외국인 관광객을 맞고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구시가지 근처에서는 성조기로 꾸미고 호객을 하는 쿠바인을 종종 볼 수 있다.
12일 쿠바 아바나의 관광지인 구시가지 근처 수공예품 판매 창고 앞에서 성조기가 그려진 반바지를 입은 한 쿠바인 택시기사가 외국인 관광객을 맞고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구시가지 근처에서는 성조기로 꾸미고 호객을 하는 쿠바인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직 ‘대다수’의 쿠바인들은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발표가 주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우려가 존재하긴 하지만, 쿠바인들의 일상에 지난해 12월의 국교 정상화 추진 담화 발표가 준 변화는 크지 않다. 실제 쿠바의 변화는 2010년 정부가 경제 개혁 조치를 발표하며 국가 기관을 통폐합하고 공무원 100만 명가량을 정리해고하면서 시작됐다. 명목은 경제 개혁이었지만, 쿠바에서 만난 지식인들은 미국의 엠바고와 사회주의식 국가 경영이 실패하며 경제가 악화해 정부가 더는 국민 개인의 생활을 책임질 수 없게 됐기 때문에 행해진 조치였다고 입을 모았다.

쿠바에서는 국방부 소속 간부부터 동네 병원 의사까지 모두 공무원으로 분류되며 15∼30달러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받을 길이 사라진 해고된 쿠바인들을 위해 정부는 특별 조치인 ‘자영업 허용’을 실시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가 결합해 있는 쿠바에서 비록 국가의 통제 속에 있는 상태지만 자영업의 허용은 개인에게 부를 축적할 수 있는 틈새를 만들었다.

정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개인이 부자가 되는 길을 제한하긴 했지만, 자영업을 하게 된 일부 국민들은 당연한 이치로 딴 주머니를 만들어 국가가 알지 못하는 돈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소득을 올리는 자영업자들은 극소수다. 현지에서 만난 한 쿠바 카페테리아 자영업자는 “돈을 축적할 수 있을 정도로 자영업을 하는 쿠바인은 1%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는 이익을 내기 위해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그날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한다. 쿠바에는 집의 현관과 거실에 해당하는 곳을 고쳐 한화로 50원도 하지 않는 에스프레소를 파는 집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작은 손수레에 마늘 두 타래와 바나나, 양상추, 당근 등을 싣고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도 많다. 쿠바인들이 쓰는 화폐 단위 중 하나인 1페소쿠바노(CUP, 세우페)는 한화로 50원 정도다. 정부에서는 공무원 월급이나 연금 등을 이 화폐로 지급한다. 이 외에 다른 화폐 단위인 페소콘베르티블레(CUC, 세우세)의 경우 1CUC가 1달러에 해당하며, 1CUP의 24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주로 외국인 화폐로 알려졌는데, 현지인들도 CUC를 쓴다. 물론 관광객들은 1.5CUC에 해당하는 500㎖ 생수를 쉽게 사 먹을 수 있지만, 생수 한 병이 월급의 10분의 1에 해당할 수도 있기에 CUC를 이용한 이와 같은 소비는 쿠바인들 중에서도 소수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초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로 인한 단물은 아직 먼 이야기다.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바람이 ‘독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쿠바에서 만난 한 경제·노동 관련 업무를 하는 변호사는 “정상화될 경우 현재 국가 소유인 협동조합 소속의 토지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넘어갈 수 있고, 영세 자영업자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으며, 외국인 투자가 늘어 자본주의화한 것들이 많아져 사회주의 체제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국교 정상화 이후 연간 15∼18%까지의 인플레이션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국가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인상을 담보해 주는 폭은 5% 정도로 제한될 것으로 보여 일반 국민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미 시작된 변화에 쏠린 세계의 눈…‘21세기형 사회주의 국가는 가능할까’

하지만 당장 쿠바의 관광객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인해 ‘제2의 BNP파리바’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에 외국 투자자들의 눈도 쿠바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프랑스 BNP파리바 은행은 미국의 금융 제재를 무시하고 쿠바 등과 금융 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미 정부로부터 89억 달러(약 9조 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이와 같은 미국으로부터 받는 불이익이 두려워 투자를 꺼렸던 기업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안심하고 쿠바와 거래할 수 있게 됐다. 또 관광 활성화로 인해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유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스페인계 호텔 체인인 멜리아 기업은 이미 쿠바에만 20곳이 넘는 호텔을 보유하고 있으며, 휴양지로 유명한 바라데로 지역 등에 더 많은 호텔을 증축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이 쿠바에 투자할 경우 지분의 50% 이상은 무조건 가져가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정부는 최근 지분의 100%를 외국계 회사가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또 쿠바 정부는 최근 관광지인 구시가지 인근 항구를 관광 항구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가의 부가 국민들에게 고루 분배될 수 있게끔 되도록 만들고자 하는 쿠바 정부의 고심은 시작됐다. 가난한 국가가 개인의 삶을 100%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성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란 거대한 국가에 맞서 50여 년의 세월 동안 사회주의 체계를 지켜왔다는 자존심 사이에서 쿠바는 타협점을 찾으며 변화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와 교류하는 것과 별개로 쿠바 체제인 사회주의를 지켜 나가겠다며 ‘21세기형 사회주의 모델’을 찾으려는 시도도 꾸준히 하고 있다. 아바나에서 만난 한 경제 전문가는 “그 누구도 쿠바의 변화 방향을 예측할 수 없지만, 정부가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개인적으로는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쿠바의 경제·사회·문화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아바나=글·사진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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