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남쪽 지역은 각각 구역명이 있지만 ‘유흥구’로 불린다. 남쪽 지역의 대부분이 호텔과 카지노, 식당과 룸살롱, 카페가 들어차서 밤에는 불야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오후 8시 반, 유흥구의 에덴호텔 뒤쪽에 위치한 카페로 세 사내가 들어섰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은 셋은 곧 밀실에 자리 잡고 앉았다.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카페다. 카페 이름은 ‘백령도’. 이제는 남북한 분쟁사의 추억담에나 나오는 이름이지만 백령도에 포탄이 떨어진 지 10년도 되지 않았다.

“유흥구의 손님 절반이 중국인입니다.”

행정청 경제부장 오영복이 말했다.

“아시아와 중동, 유럽, 미국계 관광객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일본은 그중에서 7퍼센트 정도가 됩니다.”

서동수가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요즘 대마도 사건으로 일본 관광객은 감소하고 있다. 그때 특보 안종관이 입을 열었다.

“한국 국민성은 참 착하고 순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냄비 근성이라고 비웃는 자들도 있지만 잊고 포용하는 성품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성보다 뛰어납니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안종관의 입가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우리는 일본 국민 대부분이 아베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둥, 식자들의 의견은 어떻다는 둥 하면서 한일 관계가 냉각되는 것을 막으려고 해왔습니다. 이제는 현실을 정확하게 분석해 봐야 할 것입니다.

“…….”

“한국의 전자제품, 자동차 등이 세계 최고 수출량을 보이는데도 일본에서의 판매량은 연도별로 어떻게 되어있는지, 밝혀봐야죠.”

안종관의 두 눈이 열기를 띠고 번들거렸다.

“한일 관계가 험악한 데도 한국에서의 일본 자동차 선전이 대서특필되고 일본상품은 여전히 잘 팔립니다.”

“…….”

“일본 국민성이 은근히 한국산 제품을 무시하고 있는지, 또는 견제하고 있는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그때 오영복이 거들었다.

“일본이 우방이라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지난날을 진심으로 사과하면 한국 국민들은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일본 지도자들이 그렇게 일본 국민들을 인도해야지요. 제가 보기에는 일본은 군국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종업원들이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종업원들은 서동수를 몰라보는 것 같다. 오늘은 경제현장 방문을 마친 후에 술을 마시려고 이곳에 들른 것이다. 가벼운 기분으로 들어왔다가 일본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종업원들이 나갔을 때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있겠지요.”

안종관이 따라준 술잔을 든 서동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해요. 원자폭탄을 쓰지 않고 일본이 일본열도와 한반도를 움켜쥔 채 미·소와 정전협정을 맺었을 경우를 말입니다.”

둘은 눈만 껌벅였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시간을 조금 끌면 소련의 공산화 세력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일본과 합의해서 한반도를 일본령으로 해놓고 공산세력에 대한 보루로 삼았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둘은 그런 상상은 해보지 않은 것 같다. 사업가 출신인 서동수가 둘과 다른 점이 이것이다. 사업에는 수많은 예외가 발생한다. 그러니 망하지 않으려면 그 예외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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