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이사철 포장이사 서비스 ‘엉망’… 속터지는 소비자

이사 당일 일방적 계약취소 횡포
이삿짐 파손· 짐정리 ‘대충대충’
배상보험 가입 안한 곳도 수두룩

유명 연예인 내세워 홍보해놓고
정작 손실 발생땐 보상 ‘나몰라라’
지난해 피해구제 372건… 증가세


A 씨는 지난해 12월 8일 포장이사업체와 계약하고 6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그러나 이사 당일에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애초 해주겠다고 계약서에 명시한 매트리스 살균청소와 새집증후군 서비스가 안 된 것은 물론, 세탁기 연결 호스를 잘못 설치해 물이 넘치면서 주방, 큰방, 작은방, 침대 매트리스, 이불, 아기 장난감, 책 등이 젖어 버린 것. 이사업체에 보상을 요구하자 “수도에 이상이 있다”며 방문하겠다고 한 후 연락이 끊겼다.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재차 보냈지만 답을 듣지 못한 A 씨는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했다.

포장이사업체에 160만 원을 주고 이사한 B 씨. 이사가 한참 진행되던 오후 3시쯤 땀을 흘리던 이사업체 직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해 “배고프실 것 같은데 자장면이라도 시켜 드릴까요”라고 물었더니 “됐어요. 시키려면 진작 시켰어야지” “자장면은 됐고, 목욕비나 생각해 주세요”란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B 씨는 속이 상했지만 혹시 따졌다가 이사 마무리를 엉망으로 할까봐 꾹 참았다고 했다. B 씨는 “목욕비를 하라며 추가로 돈을 줬더니 약간 얼굴이 펴져서 돌아가더라”며 “계약서상에는 점심도 자체 해결하겠다고 돼 있고 추가 비용이 없다더니 이런저런 명목으로 어떻게 해서든 비용을 더 받아 가는 셈”이라고 혀를 찼다.

수도권 전·월세난과 주택 구매의 증가로 봄 이사가 대목을 맞았지만 업체들의 계약 불이행이나 이삿짐 파손·훼손, 분실, 추가 요금 요구, 계약 해제 거부 등의 소비자 피해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도권 전·월세난으로 이사 수요가 늘고 있는 가운데 이삿짐 서비스의 파손·훼손, 짐 정리 불이행, 계약 취소, 추가 요금 요구 등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잇달아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수도권 전·월세난으로 이사 수요가 늘고 있는 가운데 이삿짐 서비스의 파손·훼손, 짐 정리 불이행, 계약 취소, 추가 요금 요구 등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잇달아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유명 연예인을 앞세워 공신력 있는 브랜드인 것처럼 홍보하고도 정작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은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잦은가 하면, 배상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업체도 적지 않다. 1∼2인 가구의 증가, 공동주택 초고층화의 영향으로 포장이사 등에 이사를 의존하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이사업체가 서비스는 뒷전인 채 ‘갑’의 횡포를 은연중 부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포장이사, 반포장이사, 일반이사를 둘러싼 소비자 피해구제 건수는 408건으로, 2013년(336건)에 비해 21% 증가했다. 2012년의 285건에 견줘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이사 피해는 가구나 가전 등 부피가 크고 고가인 이사화물의 파손·훼손이나 계약 불이행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포장이사라고 해놓고 짐 정리를 대충 하거나 이사 당일에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하는가 하면, 소비자 요구에 따른 추가 작업과 상관없는 수고비, 식비 등 부당 요금을 요구하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삿짐을 잃어버리거나 추가 요금을 달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계약해제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C 씨는 지난해 12월 초순 이사비용의 10%인 계약금 10만 원을 주고 이사계약을 맺었으나 이사 당일 오전 11시가 돼도 사업자가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수차례 연락했지만 전화가 꺼져 있거나 ‘곧 도착합니다’란 안내만 되풀이해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다른 이사업체를 수소문해 겨우 이사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업체가 이삿짐을 기다리다가 돌아간 4시간의 비용과 점심식대 12만 원을 포함해 모두 72만 원의 손해배상을 소비자원에 요청했다.

피해가 발생해도 이사업체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한다. 소비자원은 “가맹점 형태의 업체와 계약하는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믿고 본사 홈페이지를 통해 계약하지만 정작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본사는 가맹점에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러니 가맹점도 배상에 적극 나설 리 없다.

현재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는 이사화물의 멸실·파손·훼손 등의 피해는 사업자가 직접 배상하되 피해물품이 보험에 가입돼 있어 보험금을 받는 경우는 이 금액을 차감한 후 배상토록 돼 있다. 또 사업자의 귀책으로 인한 운송계약의 해제 시에는 △약정된 운송일의 2일 전까지 통보 시에는 계약금 환급 및 계약금의 2배액 △1일 전 통보 시에는 환급 및 4배액 △당일 통보 시에는 환급 및 6배액 △약정된 당일에 통보가 없는 경우는 환급 및 10배액을 배상하거나 실손해액을 배상토록 돼 있다.

소비자원 경기지원 측은 “2012년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피해구제 건수 303건 중 환급이나 수리 등 피해구제 단계에서 합의가 이뤄진 경우가 130건, 42.9%에 머물렀다”며 “이사화물서비스 특성상 사업자가 책임을 회피하거나 손해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아 소비자가 적절한 배상을 받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사업체를 고를 때는 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 허가를 받았는지 허가증 사본을 확인하고 적재물배상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방문 견적을 받아 계약서에 이사일시, 작업인원수, 에어컨 등의 추가 서비스 내역 및 비용 등을 상세하게 기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사 후에 파손, 분실 등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 내용에 대한 사실확인서를 요구하고 이사가 끝난 후에도 즉시 사진 등 입증자료를 확보한 뒤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주 소비자원 경기지원 주택공산품팀장은 “이삿짐 훼손·파손 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물론, 아예 연락이 끊겨 전혀 보상을 못 받는 사례도 많은데 무허가 업체로 드러난 경우”라며 “계약서를 쓸 때 화물량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한편, 피해가 발생하면 소비자상담센터에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고 권고했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
이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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