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올려주겠다” 꾀어 사기친 돈 개인통장에 송금
본인도 모르게 ‘인출책’ 전락


전세난을 틈타 전세 자금을 대출받으려는 서민들을 속여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이용한 일당이 구속됐다. 이들은 ‘대포통장’ 단속이 강화되자 인출책마저 보이스피싱으로 낚아 충당하는 새로운 사기수법을 개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서울 강동경찰서에 따르면, 광진구에 사는 이모(70) 씨는 지난 6일 갑작스레 ‘A대부’란 업체로부터 신용등급을 올려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회삿돈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거래실적을 쌓아줄 테니 신용등급이 올라 원하는 만큼 대출을 받게 되면 대출금의 3%를 수수료로 지급하라는 제안이었다.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전셋집을 마련해줘야 하지만 대출이 쉽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이 씨는 동작구 이수역 앞 커피숍에서 A대부 직원이라는 ‘김 대리’를 만나 계약서를 작성했다.

김 대리는 이 씨에게 “거래실적을 쌓기 위해 통장에 회삿돈을 넣어줄 테니 출금을 해 오라”고 지시했고, 이 씨는 이후 이틀간 7차례에 걸쳐 자신의 통장에 들어온 1억6900만 원을 인출해 김 대리에게 넘겼다. 이 씨는 그러나 지난 16일 느닷없는 경찰의 출석 통보를 받았고, 김 대리는 연락이 끊겼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처럼 전세대출을 위한 신용등급을 올려주겠다는 김 대리 일당에 속아 자신의 계좌로 돈을 입출금하며 인출책 역할을 하게 된 사람들은 5명이 더 있었다.

김 대리는 실상 중국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하부 조직원인 조선족 한모(23) 씨로 밝혀졌다. 지난해 입국한 한 씨는 역시 조선족인 정모(24) 씨, 서모(24) 씨와 함께 송금책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은 지난 2월 26일부터 이달 11일까지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으니 돈을 국가정보원 안전계좌에 보관해야 한다”고 속여 피해자 27명으로부터 10억8900여만 원을 뜯어냈고, 한 씨 등은 이 가운데 8억9000여만 원을 중국 본부에 송금했다. 경찰은 추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는 한편 한 씨 등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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