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여명이 3만원씩 출자
‘밥상 공동체’로 새출발해
친환경 재료에 조미료 안써
전통 장 전파‘발효학교’도
“부자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알아서 찾아 먹지만 저소득층은 그러지 못해 건강을 잃기 쉽습니다. 어려운 분들도 형편껏 돈을 내고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해 건강을 지키자는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밥집’입니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동교로 ‘문턱없는 밥집’에서 만난 고영란 대표는 “어려운 분들은 돈을 못 내고 식사하실 수도 있고, 여유가 있는 분들은 내키는 만큼 돈을 내는 시스템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며 “문턱없는 밥집의 사회적 임무가 땅을 살리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를 돕고 누구나 한 끼의 건강한 식사를 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이런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점심 메뉴는 유기농 비빔밥 등 한 그릇 음식이 주를 이룬다. 고 대표는 “모든 음식재료는 농약,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산물을 이용해 화학조미료 없이 조리한다”며 “먹고 난 그릇을 숭늉으로 헹구는 빈 그릇 운동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식당의 이런 방침에 잘 따르고 있나”는 질문에 그는 “한해 우리나라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이 20조 원이 넘는 상황에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도 줄이고, 세제 사용도 덜 하기 위한 취지라는 점을 설명하면 손님들도 솔선수범한다”고 말했다. 이 밥집에서 빈 그릇 운동을 배운 어린이들은 집이나 학교에서도 이를 실천하기도 한다.
문턱없는 밥집은 2014년 5월 기획재정부로부터 사회적협동조합 인가를 받았다. 사회적협동조합이 되기 전까지 이 밥집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난 2007년 처음 문을 연 이곳은 형편껏 내는 밥값 제도를 운용하면 적은 돈을 내거나 무료로 밥을 먹는 저소득층 이외에 여유 있게 밥값을 내는 기부자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자발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고 대표는 “한 끼당 기준 가격이 5000원인데 고급 승용차를 타고 세 분이 오셔서 식사하고 5000원만 내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며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지만, 막상 본인에게 계산서가 청구되는 것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턱없는 밥집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2013년에는 이대로 문을 닫을 판이었다.
문턱없는 밥집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곳에 점심을 먹으러 오던 손님들과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대책위원회를 꾸리기에 이르렀다. 이런 밥집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후 조합원 모두가 출자를 통해 주인이 되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로 결론이 났다. 문턱없는 밥집은 1년여 동안의 위기를 지난 뒤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됐다. 1인당 출자금이 3만 원부터 시작해 큰 종잣돈이 되지는 못했지만, 조합원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은 문턱없는 밥집의 지속가능성에 큰 힘이 됐다. 또 지정기부금 단체로 등록돼 후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고 대표는 “조합원이 100명이 조금 넘는데 가게를 내 집처럼 생각한다”며 “조합원을 위해서 정크푸드 등으로 인한 문제점을 같이 공부하는 시간을 갖거나 우리나라 장 종류 음식 등이 얼마나 몸에 도움이 되는지 전파하는 ‘발효학교’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문턱없는 밥집은 형편껏 음식값을 내는 점심 장사와 함께 정찰제 메뉴로 운영하는 저녁 장사도 병행하고 있다. 저녁에는 들깨순두부(1만1000원), 청국장(1만1000원), 채식쌈밥(1만5000원), 버섯전골(3만5000원), 채소전(1만5000원), 고등어구이(1만5000원) 등 다양한 메뉴를 마련해 놓고 있다. 인근 식당보다 약간 비싸다는 느낌이 드는데도, 저녁이면 대부분 테이블이 꽉 찬다.
고 대표는 “모든 먹거리를 친환경 음식재료로 만들다 보니, 보통 재료를 쓰는 것보다 몇 배 비싼 원가가 든다”며 “많은 친환경 식당이 운영에 어려움을 느껴 문을 닫거나 일반 음식점으로 전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요식업 자영업자의 생존율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10명이 음식점을 차리면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업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현실 속에서 2007년부터 8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문턱없는 밥집’이 내세우는 사회적 가치에 공감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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