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뤼커(遊客)’는 여행객을 뜻한다. 이 말이 객지인 한국에서 ‘요우커(遊客)’로 변했고, 언제부턴가 중국인 관광객을 통칭하게 됐다.
지난 토요일 서울 중심가의 한 백화점을 찾았다가 ‘요우커 열풍’을 실감했다. 쇼핑을 하다가 곳곳에서 중국인 관광객과 부딪쳐야 했다. 화장품 코너 등에서는 한국말보다 중국말이 더 많이 들렸다. 문득 쓴웃음이 났다. 관광지와 쇼핑가를 휩쓸고 다니는 요우커가 시끄러워서 싫다는 한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였다. 상대방이 알아듣기 쉽게 큰 소리로 대화하는 게 중국인의 특성이라는 어느 문화전문가의 귀띔도 떠올랐다.
한 국가의 국민총소득(GNI)이 1만 달러를 넘어서면 해외여행 붐이 일어난다고 한다. 중국은 그 아래 단계에서 바람이 불었고, 한국도 혜택을 입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613만여 명.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43%나 차지한다. 수년 내 ‘요우커 1000만 시대’가 온다는 것이 정부와 업계의 기대다. 그때가 오면 그들이 연 30조 원 정도를 쓸 것이라는 추산이다.
그런 전망을 실현하기 위해선 우리가 이 시점에서 직시할 게 있다. 그 첫째는 이웃 나라 일본을 찾는 요우커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 둘째는 그들의 한국 여행 만족도가 매우 낮다는 것.
올 춘제(春節) 연휴 기간 일본에 간 요우커는 45만여 명이라고 한다. 한국을 방문한 숫자의 3배가 넘는다. 요우커들은 중·일 역사 갈등과 방사능 우려 등으로 일본 방문을 꺼린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엔저(低)를 틈 탄 일본 정부의 반드레한 유혹, 즉 면세품 확대, 비자 규정 완화 등에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이웃한 탓에 유치 경쟁을 벌여야 하는 우리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일본을 찾은 요우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인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관광문화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방문 요우커의 만족도는 16개국 관광객 중 14위였다. 재방문 의사도 14위였다.
왜 그럴까. 얼마 전에 만난 공연기획자 송승환 씨로부터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요우커가 많이 찾는 공연 ‘난타’로 중국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그런 연유로 중국 관광객 실태를 들여다보게 됐다고 한다.
“저가 덤핑 여행 상품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게 큰 문제예요. 여행사들이 요우커 유치를 위해 과당 경쟁을 하고 있어요. 제값을 받기는커녕 돈을 주고 모셔오는 ‘마이너스(-) 투어피’ 상품이 흔해요. 그 손실을 메워야 하니 구매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쇼핑센터로 여행객을 내몰 수밖에 없지요. 값싼 모텔, 음식점에만 데려가고요.”
그런 대접을 받은 요우커가 한국을 다시 찾고 싶다고 할 리가 없다. 일부 요우커의 쇼핑 욕구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모두를 ‘걸어다니는 지갑’으로만 여기는 태도는 반감을 사서 결과적으로 발길을 끊게 한다는 게 송 씨의 걱정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여행 상품의 질을 높이는 과제가 새삼 절실하게 느껴졌다. 날탕이 판치는 저가 덤핑 상품을 근절하는 것. 요우커가 쇼핑백만 들고 가지 않고 우리 문화와 역사를 느끼고 갈 수 있도록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으나, 정부와 업계가 손을 맞잡고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다가 결국 쓰러진다. 요우커 쇼핑 열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우리 관광 산업이 쓰러져 있는 꼴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요우커를 둘러싼 한·일전은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진 ‘저가’를 내세워 이 승부에 임해 왔지만, 이젠 달라져야 한다. 요즘 늘어나는 개별자유여행(FIT) 요우커의 수요에 맞게 지역-산업별 특성이 있는 콘텐츠를 갖춰가야 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한류 문화도 보다 다채롭게 꾸며 내놔야 한다.
크게 보면, 요우커는 동북아의 복잡한 정세 속에 한국의 ‘우인(友人)’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다. ‘처음 만나면 낯설지만, 두 번 만나면 친숙해지고, 세 번 만나면 친구가 된다(一回生, 二回熟, 三回是朋友)’는 중국 속담이 있다. 요우커가 한국을 두 번, 세 번 찾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매력을 높여야 한다. 여행객인 그들이 소란스럽다며 게정을 부리기 이전에 얼마나 넉넉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대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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