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방영 고려 유행어는 ‘금기’외국 영화사서 대본·파일 받아 프리랜서 번역 작가 등에 맡겨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등 직배사 美 본사서 모든 자막 직접 관리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한글자막이 어색해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고, 또 캐릭터의 특징과 상황을 원 대사보다 더 적절하게 설명한 자막이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번역을 잘못 했거나 지나치게 유행어를 반영한 자막은 ‘오역(誤譯)’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고, 작품의 맛을 잘 살린 자막은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에 큰 도움을 준다.

영화 직배사나 수입사에서는 외국 영화사로부터 받은 대본을 영상 파일과 함께 프리랜서 번역 작가나 번역 업체에 맡겨 한글자막을 만든다. 자막이 완성되면 몇 차례 수정 과정을 거쳐 영상에 붙인다. 외국 드라마 자막도 같은 과정을 거쳐 입혀진다. 드라마를 사온 업체가 배급사로부터 원문 대본을 받아 자막 번역 업체에 전달하면 업체에서 번역 및 마스터링 작업을 진행하고, 최종 심의를 거쳐 방영하게 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UPI코리아 등 직배사들은 미국 본사에서 전 세계 모든 자막을 직접 관리한다. 이십세기폭스와 계약을 맺은 자막 업체에서 한국 번역작가에게 직접 대본과 영상 파일을 보내주고, 완성된 자막을 받아 극장 상영용 디지털시네마패키지(DSP)를 제작한다. UPI도 한국 지사에서 번역작가에게 의뢰해 만든 자막을 받아 영상에 입히고, 이 파일을 다시 한국에 보내 검수 과정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DSP를 만든다.

자막 검수 과정에서 한국 관객이 이해할 수 없는 유머나 외국 유명인사와 관련된 이야기 등이 한국식으로 바뀌고, 또 원 대본에는 없는 부분이 추가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한 직배사 마케팅 관계자는 “코믹 영화는 원 대사를 직역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한국식 유머로 바꿔 자막을 만든다”며 “또 음악이 많이 삽입된 영화의 경우 대본에는 노래 가사가 나와 있지 않지만 가사에 영화 줄거리와 관련된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 따로 가사를 받아 번역 작업을 거친 후 한글자막으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자막 번역료는 번역작가의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톱 클래스 번역작가의 번역료는 편당 250만~400만 원이며 그 아래 등급은 50만~100만 원 정도다. 또 극장 상영을 하지 않고, 바로 IPTV, 케이블TV 등에서 방영하는 부가판권용 영화는 비용 절감을 위해 HD파일을 만드는 업체에 자막 작업까지 의뢰하기도 한다. 한 영화수입사 관계자는 “번역을 누구에게 맡기느냐에 따라 자막의 질이 큰 차이를 보인다. 돈을 많이 들이면 장면 상황에 맞는 세련된 자막이 나오지만 파일 제작 업체에서 하는 번역은 직역 수준으로 표현이 거칠다”며 “극장에서 상영할 영화는 돈이 많이 들어도 톱 클래스 번역작가에게 맡기지만 극장에 잠깐 걸었다가 바로 케이블TV로 보낼 영화는 번역료를 적게 받는 번역작가나 업체에 의뢰한다”고 밝혔다.

영화 자막도 유행을 탄다. 요즘 자막 트렌드는 원 대사에 충실하고,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어투를 쓰지 않는 것이다. 한 영화수입사 마케팅 팀장은 “5~6년 전에는 원 대사와 관계없이 자막을 재미있게 만들어 붙였는데 요즘은 원 대사를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바뀌었다”며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후 IPTV나 케이블TV까지 가는 데 1년 정도 걸리고, 부가시장에서는 계속 방영되기 때문에 유행을 타는 자막을 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특히 성인 영화의 경우 부가판권 비중이 크기 때문에 유행어를 아예 안 쓴다”며 “하지만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은 ‘개그콘서트’에서 나온 유행어를 쓰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케이블TV에서는 극장 상영용 자막을 지우고, 자사 채널 방영용으로 별도의 자막을 만들기도 한다. 이는 여러 차례 재방송 되는 것을 고려하고, 방송심의에 맞추기 위해서다.

여러 개의 케이블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CJ E&M 관계자는 “케이블채널의 특성상 재방송 활용 가능성을 감안해 트렌디한 말투나 어조 등은 피한다”며 “또 유행어나 신조어는 오역이나 내용 비약의 여지가 있고, 추후 방송에서 시의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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