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교수는 백운동 별서 정원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만큼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며 인터뷰 내내 이 정원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중한지 이야기했다.
‘다산을 좇다 백운동 정원에 들어섰다.’
고전 인문학자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최근 내놓은 ‘강진 백운동 별서 정원’(글항아리) 작업은 이렇게 요약된다. 그가 다산 정약용 친필을 찾아다니다 백운동 별서 정원, 지역 주민은 물론 주인조차 가치를 몰랐던 호남 원림·전통 정원의 원형인 이곳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책은 이 과정에서 만난 인연과의 약속을 지킨 결과이기도 하다.
“2006년 물어 물어 다산 친필을 찾아갔는데 유서 깊은 정원인지 몰랐다. 12대째 별서 정원을 지켜온 주인 이효천 옹은 적대적이었다. 그런데 책상에 내 책 ‘죽비소리’와 ‘한시미학 산책’이 있었다. ‘제 책이네요’ 했더니 그다음부터 무장해제돼 온갖 자료를 다 보여 줬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주인은 그날 초서로 된 책을 보여주며 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정 교수가 살펴보니 전설의 차 관련 서적 ‘동다기’였고, 알려진 것과 달리 저자는 다산이 아니라 이덕리였다. 이를 논문으로 발표하자 차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 내용을 ‘조선의 차 문화’의 한 챕터로 쓰면서 백운동에 대해 본격적으로 쓰겠다고 약속했다. 노인은 몇 년 전 돌아가셨고 이제야 약속을 지켰다.”
23일 한양대 인문대 학장실에서 만난 정 교수가 돌아본 ‘강진 백운동 별서 정원’이 시작된 이야기다. 하지만 인문대 학장까지 맡아 시간에 쫓기는 그가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개발소식’이었다.
“지난해 백운동 복원 개발 자문회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려갔더니 우려한 대로 야영장을 만들고 덱으로 둘러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굉장한 자원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왜 중요한지 책으로 쓸 테니 그때까지만 참아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뒤 정 교수는 다산이 백운동 풍광에 대해 쓰고 제자 초의선사가 그림을 그린 ‘백운첩’ 등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고, 입산조 이담로의 친필 자료, 당대 쟁쟁한 사람들이 백운동 정원에 대해 쓴 시문을 모았다. 그는 주말이면 파주출판단지 내 연수원 호텔에 들어가 작업을 했다. 책에는 이렇게 모은 백운동과 별서 정원에 대한 모든 것이 정리돼 있다. “없던 것도 만드는 데 있는 것을 못 지키면 창피하다. 민간 정원으로 소쇄원, 명옥헌, 다산초당은 유명하지만 이곳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대밭, 동백숲, 둘러싼 차밭, 보조국사 지눌, 대각국사 의천이 거쳐 간 주변 백운사 터까지. 근사한 문화 벨트가 될 수 있다.”
한편 이번 작업은 지난해에만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 공화국’ ‘새 문화사전’ ‘우리 한시 3백수’ 등을 출간하며 놀라운 ‘지식 생산력’을 보인 정 교수의 연구 방법을 보여준다. 2004년 조선 지식인의 열정을 탐색한 ‘미쳐야 미친다’로 대중적 각인을 얻은 그는 연암 박지원, 다산, 18세기 지식계, 도상학, 한시, 독서, 차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며 끊임없이 베스트·스테디셀러를 내놓는 드문 인문학자이다. 어떻게 이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탁월한 지식 편집자이자 전방위적 지식 경영인인 다산의 연구 방법”이라며 “다산이 가르쳐준 방식을 파워풀하게 써먹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평소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 자료를 추적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다 흩어진 이들 보석들을 꿸 수 있는 계기가 생기면 이를 엮어낸다. 이번에도 다산을 좇아 백운동 정원을 드나들며 모아둔 자료들을 강진 개발 계획을 맞아 써낸 것이다.
“지난 7, 8년간 다산에 집중했다. 다산을 마무리하고 연암 쪽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하고 싶은 일들, 밀린 작업들이 너무 많다”는 그는 “연암과 다산은 스승 중의 스승이다. 연암이 높고 깊다면 다산은 넓고 크다. 연암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혼란에 빠트린 채 고민하게 한다면 다산은 알아들을 때까지 알려준다. 연암 밑에선 거물이 나오지만, 다산에게선 큰 인물이 안 나온다. 대신 다산은 엄청난 생산력을 가졌다. 이 둘을 매치해 다산의 방법론으로 연암의 사유를 한다면 천하 무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연구는 다산과 연암에 집중될 것인가. 전방위적 지식 경영인의 관심이 그를 그렇게 내버려둘 리 없다. 그는 현재 초의선사 평전을 쓰고 있다. ‘새 문화사전’의 연장선상에서 도상학도 붙잡고 있고, 신문에 고전 명구 칼럼, 차 잡지에 차 관련 연재에, 자신의 홈페이지엔 ‘선시 3백수’를 연재 중이다. 8월에는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조선 지식인의 필담에 대해 독일 보흠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백운동 정원을 연구하며 알게 된 고려 불교에 대해서도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