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괴물 뱀파이어는 ‘흡혈(吸血)’의 방식으로 인간 사회의 탐욕을 환기시키면서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 해 왔다. 동물 세계의 약육강식보다 잔인한 인간의 횡포를 뱀파이어의 흡혈 행위에 비유하여 표현하기도 했다. 그만큼 인간과 가까운 괴물이 바로 뱀파이어였지만, 그래도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섬뜩하고 불길한 존재로 인간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타자일 뿐이었다. 의료현실과 인간생명의 가치를 역설한 KBS 2TV 월화 미니시리즈 ‘블러드’는 뱀파이어에게 감염된 의사들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흡혈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질병으로부터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면서 악행을 저지르는 이재욱(지진희)과 그에 맞서 생명의 존엄성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박지상(안재현)은 불의의 사고로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존재들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와 뛰어난 두뇌로 주변 사람들의 신망이 두터운 이재욱은 뱀파이어에게 감염되면서 생긴 능력으로 나이와 지위 그리고 빈부에 상관없이 질병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악행을 일삼는다. 반면에 외과의사로서의 천재적인 능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박지상은 어린 시절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후 생긴 피에 대한 욕망과 반응을 숨기고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처럼 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택하면서 서로 대립하게 된다.
이재욱과 박지상의 대립과 갈등은 태민암병원의 21A병동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이 병동은 질병 퇴치라는 명분을 내세운 이재욱 원장과 불치의 희귀병에서 벗어나 부와 권력을 좀 더 오래 누리려 하는 태민그룹 회장 유석주(김갑수)의 욕망이 만들어낸, 착취의 현장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의 환자를 무상으로 치료해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생체 실험을 숨기기 위한 위선일 뿐이다. 인간 사회에서 타자로 취급되었던 뱀파이어를 대신하는 박지상과 이재욱의 대립과 갈등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짓밟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 시대를 환기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으로 살고 싶은 뱀파이어 박지상이 인간을 살리기 위해 이재욱과 유석주의 악행에 맞서는 모습은 분명 영웅적이다. 그의 영웅적 면모는 감염학을 연구하던 부모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후 생긴, 인간을 살릴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한다. 영생의 뱀파이어가 생명이 유한한 인간을 치료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뱀파이어는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이지만, 공포를 통해 쾌감을 추구하는 유희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공포의 쾌감은 작동하기 어렵다. 흡혈의 시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저조한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경제 논리에 치여 도덕과 윤리 의식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뱀파이어임을 자각해야만 할 것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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