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우리나라에서는 밀이 귀해 밀가루 음식은 궁중이나 사대부가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 조선 중기인 1700년대 이시필이 집필한 ‘수문사설’ 식치방(食治方) 편에는 밀가루로 만든 면근탕(麵筋湯)이 나온다. 수문사설에 나오는 면근탕 만드는 법을 살펴보자. 우선 밀기울에 밀가루를 섞어 물로 반죽해 병(餠)을 만든다. 이것을 손으로 부드럽게 주물러서 깨끗한 것을 취해 편(片)을 만든다. 그러면 밀기울 가루는 산산이 흩어져 버리고 옥좌를 이룬 것 같은 형태가 된다. 편을 탕 속에 넣는다.

면근은 사실 밀가루의 글루텐(gluten)을 이용한 음식이다. 밀가루에 소량의 물을 넣어 덩어리 반죽을 만든 후, 이를 물속에서 주물러 점착성이 있는 성분을 떠내는데 이것이 바로 글루텐이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만든 면근을 밀고기라고도 했다. 밀고기는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기 위해 곡물을 물에 담가 가라앉는 남는 쫀득한 것(글루텐)을 가지고 고기 대신 씹을 음식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다. 면근의 쫄깃쫄깃한 맛 때문에 상중에 고기를 먹지 못하거나 고기를 멀리하는 불가에서 고기를 대신해 즐겨 먹었다고 한다.

밀가루에 들어 있는 단백질 성분인 글리아딘(gliadin)과 글루테닌(glutenin)이 물과 만나면 쫄깃한 글루텐으로 변하고, 여기에 열을 가하면 부풀어서 늘어나는데 이를 활용해 빵, 과자 등을 만든다. 우리 몸속에서 글루텐이 소화되려면 글루텐 분해효소가 분비돼야 하는데 개인 체질에 따라 글루텐 분해효소가 선천적으로 나오지 않거나 부족한 사람이 있다. 그런 경우 소화에 문제가 생기고 소화되지 않은 글리아딘이 소장의 점막을 손상시켜 흡수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350여 년 전의 면근탕은 오늘날 글루텐 음식에 대한 조리과학적·영양학적인 이해와 무관하게 밀가루의 글루텐 성질을 조리에 잘 활용한 음식으로 보면 될 듯하다. 단 면근탕은 글루텐 소화효소의 문제가 있는 경우는 피해야 한다. 농업진흥청 전통한식과에서 발간한 ‘현대식으로 다시 보는 수문사설’에 나오는 면근탕 만드는 법도 참고로 살펴본다. 밀가루(강력분)에 물을 넣어 반죽한 다음, 베보자기에 넣는다. 냄비에 물과 다시마를 넣고 은근한 불에서 끓여 체에 밭쳐 육수를 만든다. 이때 물이 줄지 않도록 한다. 냄비에 준비한 육수를 넣고 은근한 불에서 다시 끓여 육수를 넣어 간을 한다. 펄펄 끓을 때 준비한 면근을 편으로 만들어 넣고 송이버섯을 저며서 넣는다. 한소끔 끓으면 그릇에 담아 송송 썬 실파와 후춧가루를 뿌려서 낸다.

공주대 명예교수, 전 한국가정과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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