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어웨이에서 드라이버로 볼을 쳐 200m를 날릴 골퍼가 몇이나 있을까. 간혹 정규 대회 때 프로들이 파5 홀에서 2온을 노리기 위해 시도하는 경우가 있지만, 주말골퍼들의 세계에서 페어웨이에서 치는 드라이버 샷은 ‘진기 명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평범한 주말골퍼라고 소개한 조양환(54) ㈜정안철강 대표는 페어웨이에서 티를 꽂지 않고 드라이버로 치는 샷을 자신의 ‘골프 주 무기’로 꼽았다. 그는 티샷을 치는 거나 페어웨이에서 드라이버로 치는 거나 보낼 수 있는 거리는 200m로 비슷한 편이라고 했다.
조 대표가 이처럼 페어웨이에서 드라이버로 종종 치게 된 건 3년 전부터였다. 비거리가 짧아 고민이던 그는 우연히 동반했던 한 프로가 페어웨이에서 드라이버를 호쾌하게 치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열에 한두 번 성공하기도 어려웠다. 번번이 땅볼로 굴러갔을 정도로 어려운 샷이었다. 연습장에서도 티에 올려놓지 않고 바닥에 놓고 치는 바람에 옆 사람들의 눈총을 받은 적이 많다. 바닥이 쿵쿵 울리는 소음 탓에 남의 연습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제는 세게 친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갖다 댄다고 마음먹고 친다. 그러다 보니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덕에 그는 지금까지 이글을 여섯 차례나 기록했다. 대부분 파 5홀에서 2온 후 기록한 이글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무역회사에 다니다 2년 만에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부친(조병석·82)이 운영하던 회사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던 것. 부친 회사에 다니면서 그는 1989년부터 골프를 접했다. 당시 부산 경남지역에는 골프장이라야 부산, 동래, 울산 등 10곳도 채 안 됐을 무렵이었다. 서른 살도 안 된 그가 골프를 치려니 늘 선배나 아버지뻘 되는 동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때 지역의 학교 선배인 정치인들을 자주 만나면서 부친의 기대와는 달리 정치에 뜻을 두게 됐다. 그는 30대 초반 부산에서 지방의원에 당선됐고, 광역의원으로도 활동하며 부산지역 최연소 부의장까지 역임했다. 2008년 꿈을 키워 한나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지만 ‘친박 파동’ 후유증으로 낙선하고 정치에 뜻을 접었다.
그는 골프를 시작하면서 무조건 잘 쳐야 한다며 연습에 몰입했다. 시작한 지 두 달도 안 돼 보기 플레이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처음엔 골프를 하면서 내기를 하니까 상대방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 같았다. 상대방이 스코어에 집착하다 보니 날카로워졌고, 자신도 불편해지더라는 것이다. 이후 그는 내기 골프보다는 사람들과 만남을 즐기는 골프로 바꾸었다. 겨울이면 라운드 중 동반한 어른들이 주는 술을 거절할 수 없어 한 라운드에 정종 7잔을 마시며 플레이한 적도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도 70대 스코어 한 번 진입하지 못했다. 베스트 스코어는 81타. 정치를 그만둔 뒤 1주일에 5일을 하루 36홀씩을 친 적도 있고, 한번은 중국 쿤밍 춘성골프장에서 하루에 45홀을 치는 등 원 없이 골프에 빠졌던 때 나온 스코어다.
그는 정치를 하면서 여러 차례 선거를 치러서인지 친화력이 좋은 편이다. 정치를 그만둔 뒤 부산에 본사를 둔 기술보증기금 감사로 근무할 시절 파격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연간 20조 원의 기금을 중소기업에 지원해 주는 공기업의 감사가 임직원 골프대회를 주최했던 것. 사내에선 ‘정신없는 사람’이라며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 물론 참가자들로부터 그린피를 참가비 명목으로 받았다. 하지만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전체 1000명의 직원 중 소문을 듣고 전국의 지점장과 팀장들이 12팀(48명)이나 모였다. 몰래 숨어서 골프를 치고 눈치만 보던 직원들이 떳떳하게 골프를 치며 하루를 보냈던 것. 그는 참가자들에겐 사비를 털어 식대와 기념품을 돌렸고, 지난해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두 차례나 더 임직원 골프대회를 열었다.
지난해 경남 양산의 에덴벨리 골프장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했다. 당시 밸리 6번 홀(파3·165m)에서 4번 아이언으로 친 볼이 그린에 떨어졌고, 붙었겠다 싶어 갔더니 그린에 볼이 없었다. “설마”하며 핀 쪽으로 가서 보니 그의 볼이 홀에 들어가 있었다. 홀인원 직전 1오버파를 쳤지만, 이후로는 정종파티를 하는 바람에 87타를 쳤다. 홀인원 이후 벌어 놓은 스코어를 다 까먹었던 것. 사실 그의 동반자 중 1년 전 홀인원을 했던 선배가 있었고 다른 2명의 동반자는 생면부지의 인사들이었다. 이 홀인원을 매개로 뒤풀이하면서 평생 함께 골프를 치자며 의기투합해 지금까지 부부동반 모임은 물론 해외여행도 함께 다니고 있다.
철강 유통업으로 새로운 사업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모든 것은 사람으로 통하는 게 세상의 이치”라면서 “특히 골프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기량은 변해 있어도 상대를 대하는 마음만큼은 변치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 조양환에게 골프란 = 잊혀지지 않는 첫 사랑과 같다. 골프에 한번 빠지면 쉽게 잊을 수 없게 되고, 늘 시작 전 설레임과 기대감을 갖게 한다. 끝난 뒤에도 늘 아쉬움을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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