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범 / 駐벨기에·유럽연합 대사



벨기에는 우리에게 초콜릿과 와플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곳에서는 만화 또한 큰 자랑거리이다. 만화에 대한 벨기에 국민의 자부심과 애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매년 3000종 이상의 새로운 만화책이 출판되고 전체 출판물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만화가 차지하는 위치는 확고하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벨기에가 본고장임을 잘 알고 있는 ‘틴틴의 대모험(Les Aventures de Tintin)’의 경우, 할리우드 영화 제작 외에도 2000년까지 20억 부 이상의 서적이 판매됐다. 1958년 처음 탄생한 파란 요정 ‘스머프(Smurf)’는 전 세계 20개 이상의 언어로 발간됐으며, 특히 1980년대부터 30여 개국에서 TV 방영을 통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인상을 준 것은 벨기에 국민이 만화를 단순히 아이들의 유희가 아닌, 예술의 한 장르로서 바라본다는 것이었다. 만화가를 아티스트라고 부르며, 만화 장르에 있어 표현의 예술성과 철학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에 열광하는 것은 우리가 ‘미술’이라 부르는 분야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벨기에 국민은 만화 장르 속에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플랑드르 르네상스의 대가 피터르 브뤼헐과 초현실주의 대가 르네 마그리트까지 투영되고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아르누보 건축의 거장 빅토르 오르타의 건물을 만화박물관으로 사용할 정도이니 벨기에 내 만화의 위상은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벨기에인 줄리안(왼쪽)이 지난 2월 18일 한 TV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브뤼셀 한국문화원을 방문해 뽀로로와 스머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벨기에인 줄리안(왼쪽)이 지난 2월 18일 한 TV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브뤼셀 한국문화원을 방문해 뽀로로와 스머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만화를 통해 세계를 지배했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진 벨기에에서 우리 만화의 현주소는 어떨까? 우리가 벨기에 만화를 잘 알지 못하는 만큼, 그들도 우리 만화의 가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브뤼셀 한국문화원은 ‘뽀로로’와 ‘스머프’가 친구가 되고, ‘미생’의 ‘장그래’가 유럽의 유명한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야심 찬 전시 프로젝트(프로젝트명 ‘크로싱’)를 기획하게 되었다. 진정성과 열정은 세계 만국의 공용어인 것 같다. 만화의 성지로서 철옹성 같던 ‘벨기에 만화박물관’이 마음을 움직여 한국 작품과 함께 전시될 벨기에 작품을 손수 선정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더욱이 스머프 스튜디오(IPMS)는 초상권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특히 작고한 스머프 작가 페요의 딸은 “스머프가 한국에서 방영됐을 때 한국인들의 무한한 사랑에 감동 받았다”면서 ‘뽀로로’와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많은 스머프 피규어들과 캐릭터 조형물을 무료로 대여해 줬다. 뽀로로와 스머프가 함께 문화원 전시실 안에서 어린이들을 맞을 수 있었다.

한국 작가들과 기업들도 전시 취지 하나만을 믿고 무상으로 작품을 대여하고 세세한 전시 도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뽀로로’와 ‘미생’의 벨기에 입성은 이렇게 서로 가까이하고 싶다는 진심이 상대편에 전달돼 이뤄질 수 있었다.

양국 만화와 캐릭터가 함께한 자리에서 벨기에 만화박물관 윌렘드 그레브 관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양국의 만화 작가들이 앞으로 더욱 활발히 교류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진심을 피력했다. 얼마 전에는 직접 한국을 방문해 부천만화박물관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둘러보는 등 본격적으로 만화교류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만화 자체가 국적에 상관없이 ‘뽀로로’와 ‘스머프’를 보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양국 작가들이 작품 그 자체로 서로 소통하는 모습에서, 나이 지긋한 신사분과 어린 손녀가 ‘뽀로로’를 들고 웃는 모습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나라를 연결하는 만화의 강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2월 말로 끝이 났지만, 감동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더 많은 제2의 ‘뽀로로’와 ‘미생’이 벨기에에 소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점차 벨기에 국민의 마음에 우리 만화가 자리 잡을 것이다. 스머프와 벨기에 숲 속이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았듯이!



◇김창범(55) △제15회 외무고시△주일본 대사관 △주파키스탄 대사관 △주미 대사관 △주인도네시아 대사관 △대통령 비서실(외교안보 수석실) △국무조정실(외교심의관) △안보정책 과장 △북미3과장 △인사기획관 △평화체제기획단장 △현 벨기에, 룩셈부르크 주재 대사 및 유럽연합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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