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싱 머스트 고(Everything must go).’

우리말로 표현하기가 적당하지 않지만 직역하면 ‘전 품목 필처분’, 의역하면 ‘눈물의 세일’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보통 미국의 중고 개인물품 판매 온라인 사이트인 크레이그스 리스트나 일반 가정에서 이뤄지는 일명 ‘야드 세일’ 푯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25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애비뉴 9520번지 2층 건물에는 ‘에브리싱 머스트 고’ 문구가 걸려 있다. 2972㎡ 전시장에 가득한 물품은 피아노다. 낯익은 삼익피아노에서 스타인웨이, 야마하, 발드윈 등 온갖 브랜드의 피아노가 있다. 가격은 2000달러부터 수만 달러까지 천차만별이다. 한국에서도 흔할 수 있는 세일 문구에 시선이 가는 이유는 미국 중동부 연안에서 가장 커다란 중고 및 신품 피아노판매점이기 때문이다. 주인은 닉 마가리타스(74)로, ‘피아노 맨’이라고 불리는 업계에서는 유명 인사다. 그는 지난 40여 년 동안 ‘피아노 리퀴데이션 센터’ 회사를 경영해 왔다.

마가리타스는 지금 회사를 폐업하고 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미국에서는 연간 35만 대의 피아노가 팔렸다. 하지만 요즘에는 3만5000대 판매도 벅차다. 신품은 팔리지 않고, 중고를 사려는 사람도 드물다. 소년·소녀들은 더 이상 오랜 노력이 필요한 피아노를 배우려 들지 않는다. 건반을 내달리던 손가락은 이제 스마트폰 두드리기에 바쁘다. 간혹 피아노에 열정을 품은 사람들도 무겁고 비싸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전통 피아노보다 디지털 피아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피아노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상징이었다. 거실 한편에 자리를 잡고 저녁에 가족과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아름다운 음색을 들려줬다. 하지만 서로 모이기도 힘든 바쁜 현대사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자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풍경은 흘러간 영화 속 장면이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가리타스 회사의 폐업 소식을 전하는 워싱턴포스트(WP)를 비롯한 미국 신문들의 기사에는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난다. 소비자본주의에 묻혀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는 영국의 록 그룹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1996년작 앨범 이름이 ‘에브리싱 머스트 고’인 것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
이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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