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로 전국에서 동시 실시된 조합장 선거가 끝났다. 각지의 농협·수협·산림조합 등 1326개 조합에서 무려 230만 명의 유권자(조합원)가 투표에 참가했던 ‘미니 지방선거’였다. 조합장 선거는 대도시 아닌 농·산·어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행사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 민도(民度)의 가늠자란 소리다.
1989년 임명제에서 직선제로 바뀐 후 26년간 조합별로 따로 열리던 조합장 선거 마당이 하나로 통합된 가장 큰 이유는 ‘돈 선거’를 막기 위해서다. 실제 선관위 적발 사례를 보면 후보가 비닐하우스를 돌아다니며 냉장고 안에 돈을 넣어놓고 오거나, 양말 안에 돈을 끼워 선물하는 식의 탈법이 춤을 췄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돈 봉투를 없애려고 조합장 선거에 선거관리위원회가 개입한 준공영제가 실시된 지 10년 만에 변화의 바람은 불었다. 고발·수사의뢰 등 조치 건수는 백 단위에서 수십 단위로, 지난해엔 급기야 6건의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올해 조금 수치가 오르긴 했지만 이는 동시선거로 감시가 더 엄격해진 결과로 보인다. 선관위의 유권자 의식조사를 보면 ‘깨끗해졌다’는 응답이 65.6%, ‘더 혼탁해졌다’는 2.6%에 불과했다. 기적 같은 십년하청(河淸)이 성공한 셈이다.
공직자가 아닌 사인(私人) 조합장에게 공직선거 관리를 준용한 것은 지역에서 공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주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한 조합장들은 최고 1억 원의 연봉에 업무추진비, 인사·예산권을 틀어쥐고 향토에선 사실상 소영주 노릇을 한다. 10년간 꾸준히 전진한 끝에 시골의 민도는 올라가고 있다. 흐뭇한 일이다. 선거 후 개선점으로 ‘깜깜이 선거’란 게 꼽혔다. 선관위가 합동연설회·공개토론회, 사전투표, 예비후보등록제 같은 공직선거법의 장치를 조합장 선거에선 모두 걷어낸 탓이다. ‘3불(不) 선거’로 불린 이유다. 왜 그랬을까. 공공관리를 도입했지만 사적 영역의 공공화에 신중히 속도 조절을 한 것이다. 단계적으로 감시 수위를 높인 배경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27일 정부 공포절차를 남기고 있다. 내년 10월이면 공직자를 포함, 언론사·사립학교·학교법인 임직원은 직무 관련성 없이 100만 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된다. 기자와 교사도 조합장처럼 공적 감시가 필요한 직역이라고 국민이 동의했다면 좋다. 두 직업을 준공직자로 간주한 데 대한 과잉입법, 위헌시비는 향후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기로 하자. 과연 변호사·의사·시민단체·파워 SNS는 공적 책임이 덜한가 같은 의문도 남아 있다. 그래도 속도 조절은 필요하다. 공적 감시의 수위를 서서히 높이고, 대상 직종 역시 세심하게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김영란 본인도 공직자에서 출발해 차츰 기업, 금융, 언론, 사회단체 등 모든 민간 분야로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회견에서 밝힌 바 있다. 시골에서 출향해 고위 공무원과 법조인, 의사, 기업·금융인이 된 사회 지도층은 입맛이 쓸지도 모르겠다. 고향의 민도는 쑥쑥 올라가는데 대도시 인텔리전트빌딩에서 근무하는 전문직은 잠재적 범죄인 취급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까.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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