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롤랑 / 바르트 지음, 변광배 옮김 / 민음사

구조주의 기호학자이며 비평가였던 롤랑 바르트(1915∼1980). 영화·광고·사진 등 사회 문화 현상들을 기호 현상으로 보고, 그 의미를 읽어냄으로써 신화화된 이데올로기를 들춰냈던 20세기 대표적 지성의 생애 마지막 강의는 소설 쓰기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1978년부터 1980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소설의 준비’를 주제로 23회 강연을 했고, 두 차례 세미나를 준비했다. 하지만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의 사진에 대한 두 번째 세미나는 성사되지 못했다. 1980년 2월 25일 콜레주 드 프랑스 앞 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그해 3월 26일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2003년 출간된 책은 스물 세 번의 강연, 한 번의 세미나와 성사되지 못한 두 번째 세미나 원고를 엮은 유고 저작으로, 바르트 탄생 100주년인 올해, 그의 35주기에 즈음해 국내에 나왔다.

강연 주제인 소설로 다시 돌아가면 텍스트에 대한 저자의 독보적 권한을 부정하며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을 주장한 그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글쓰기로서의 ‘소설 쓰기’에 대해 강연했다니 흥미롭다.

이 같은 변화는 그 전해 그가 맞은 충격적 사건 때문이었다. 1977년 10월, 자신의 존재 이유와도 같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교수직 퇴임까지 생각하며 생의 의욕을 모두 잃은 그는 이듬해 봄, 카사블랑카에서 일종의 깨달음, ‘바르트의 유레카’를 얻게 된다. 이제 다양한 삶을 시도할 시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마지막 삶·새로운 삶을 시작하고픈 격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완전히 투사할 ‘대기획’을 세우게 된다. “글 쓰는 사람, 글쓰기의 행복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이란 새로운 글쓰기의 발견밖에 없다. 새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글쓰기를 실천해 과거의 지적 실천과 결별하는 것이다.” 지식인 다운 그의 대기획은 ‘문학적 개종’, 문학에 입문해 완전히 새로운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강연을 옮긴)책에는 소설 창작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글쓰기 욕망, 글쓰기 의지, 이 욕망과 의지에서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다룬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한 이상적 소설은 어떤 것일까. 스스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최고 작품을 꼽았지만 그에게 ‘소설의 이상’은 일본의 단시, 하이쿠(俳句)였다. 작가의 어린 시절, 삶에서 회상된 재료를 바탕으로 한 ‘기억의 소설’이 좋지만 자신은 기억력이 나빠 과거보다 현재, 현재에서도 순간에 주목한 ‘순간의 메모’로서의 소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또 소설은 ‘사랑의 글쓰기’라며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랑한 사람들이 이 세계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증언해줌으로써 필멸의 존재를 불멸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소설을 포함해 글쓰기, 글쓰기와 긴밀하게 연결된 책 읽기에 대한 성찰 등을 이어가는 바르트는 강연의 결론으로 ‘디아포라(diaphora)로서의 문학’을 제시한다. 구별, 변이체를 의미하는 그리스에서 유래된 디아포라는 하나의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는 문학의 존재 이유는 체계, 법칙, 일반성, 억견(doxa)에 대한 저항이라며 “존재의 고유성, 개별성, 특수성, 유일무이성을 무화시키며 개별 존재를 하나의 거대한 체계에 환원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존재에 가해지는 폭력이다. 존재를 제대로 규정하려면 고유한 무늬, 색깔, 뉘앙스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바르트 사후 35년, 그의 이 같은 강연 내용은 이제 그리 새롭지 않게 됐다. 하지만 매력적인 어조, 권위 있으면서도 따뜻한 문장, 정확하면서도 멋진 임기응변과 뛰어난 에세이스트였던 ‘바르트의 디아포라’는 여전히 강력하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지, 우리가 읽은 책은 어떻게 쓰기 욕망을 일으키는지, 새로운 글로 자신이 쓴 글을 넘어서려는 바르트의 욕망이 얼마나 뜨거운지 그리고 그가 불러낸 프루스트, 플로베르, 카프카, 말라르메 등 위대한 작가의 이야기들…. 이 모든 문장들은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아주 빈번하게 문장과 문장 사이에 멈춰 숱한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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