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탐식의 시대 레이첼 로던 지음 /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대한민국 건국 이래 요리가 이렇게 관심을 끈 적은 없다.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가 의·식·주라 했던가. 부동산 열풍과 패션의 시대를 지나 이제 요리의 향연이다. TV 프로그램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맛집 소개를 넘어 먹방(먹는 방송)이 생겨나고 셰프들이 등장하더니 요리경연대회에서 ‘삼시 세끼’까지 해먹는다. 더 맛있게 음식을 먹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이토록 진화 중이다. 출판계도 다르지 않다. 음식과 요리 관련 도서들이 최근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이중 ‘음식의 언어’와 ‘탐식의 시대’는 음식을 잘 알고 먹기 위한 두 권의 책이다. 각각 ‘언어’와 ‘역사’가 씨줄과 날줄이 돼 음식을 직조해낸다. 케첩(ketchup)·셔벗(sherbet)의 기원이 미국이나 유럽이라는 기존 관념을 뒤집고, 18세기 영국 해군이 해상권을 장악하는 데 음식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핀다. 단순 감탄사가 남발되는 식탁 위의 대화를 한결 풍성하게 만들어 줄 책들이다.

◇케첩은 중국, 시럽·셔벗은 아랍에서 왔다 = ‘음식의 언어’를 펴낸 댄 주래프스키는 미국 스탠퍼드대 언어학 교수다. 책 제목은 그가 이 대학에서 연 강의명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7만 명이 수강할 만큼 인기가 높고, 같은 이름의 블로그도 운영된다. 이른바 ‘먹기어원학(EATymology)’으로, 음식과 관련한 모든 언어의 분석을 시도한다.
음식명을 통해 뿌리를 찾는 것은 저자의 주력 탐구영역. 케첩이 좋은 예다. 많은 서구 음식에 케첩이 곁들여지기 때문에 케첩도 그들의 ‘창조물’이란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케첩은 중국 남부가 원조다. 이곳 사람들은 수천 년 전부터 생선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진한 맛의 젓갈을 만들어 먹었다. 특히 베트남 지역 푸꾸옥 섬에서 만든 것이 명성이 높았는데, 그 이름이 ‘케첩(현지 방언으로 ‘저장된 소스’라는 뜻)’이었다.
13세기 중국 남부 광저우(廣州) 항구가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케첩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17세기 인도네시아에 들른 영국 선원들은 이 기막힌 소스를 유럽으로 실어날랐다. 이후 영국은 조리법을 개선해 앤초비 등으로 케첩을 만들다 19세기부터 토마토를 넣기 시작했다. 지금과 유사한 맛의 케첩이 만들어진 것은 앤초비가 빠지면서부터다.
시럽과 셔벗은 프랑스풍의 이름이지만 본래 ‘무슬림’ 출신이다. 중세 아랍식의 달콤한 과일 혼합음료의 이름은 ‘샤라브(sharab·‘마시다’란 뜻)’. 이것이 라틴어 번역에서 ‘siropus’로 쓰였고, 이후 시럽(syrup)이 됐다. 페르시아 지역에선 샤라브와 물을 섞고 눈과 얼음으로 냉각시킨 샤르바트(sharbat)를 먹었는데, 16세기 터키와 이란을 방문한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행자들이 이를 ‘셔벗’이라 부르면서 세계 각지에 퍼졌다. 페루의 세비체, 영국의 피시 앤드 칩스, 일본의 뎀뿌라도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랍에 닿는다. 6세기 페르시아에서 왕들이 가장 즐겼던 시크바즈(sikbaj)라는 새콤달콤한 쇠고기 스튜가 이들의 선조다.

책에는 음식점 메뉴판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도 담겼다. 유독 비싼 레스토랑에 가면 ‘Marinated flank steak with egg your way(양념된 플랭크 스테이크와 당신의 취향에 따른 달걀)’ 등 유난히 긴 메뉴가 많다. 실제 저자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음식 이름이 길수록 가격이 비쌌다. 길고 어려운 단어를 쓰면서 요리재료의 출처까지 나열하는 음식은 더 그랬다. 다만, ‘신선한’ ‘풍부한’ 등 형용사 때문에 음식 이름이 길어진다면 가격은 싸졌다. 특히 중간 가격대 레스토랑이 이런 표현이 많았는데, 그건 손님들이 ‘싸구려’음식점으로 오해하는 것을 우려한 몸부림이었다.
◇음식으로 괴혈병 줄인 영국 해군, 18세기 해상 장악 =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명저 ‘총, 균, 쇠’가 인류 문명의 불평등한 발전사를 무기, 병균, 금속으로 설명한다면 ‘탐식의 시대’는 음식과 요리를 통해 역사의 전환을 해석한다. 제국의 탄생, 권력의 이동, 종교의 확산 등에 음식과 요리가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이다.
기원전 1000년경 밀·보리 등 곡식을 저장하는 기술이 발달해 부가 축적됐고, 제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곡식은 부피에 비해 영양가가 높은 먹거리였다. 요리는 발효, 가열 등 음식을 상하게 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형태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로마제국, 페르시아제국 등이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전쟁을 벌이면서 요리법이 공유되고 다양한 음식이 생겨났다.
고대·중세 시기에 음식은 특히 종교의 전파에 많은 영향을 줬다. 10세기 말 키예프의 블라디미르 대공은 국교를 결정하기 위해 각 종교 사절들을 불러 논의한 끝에 돼지고기와 술이 금지된 이슬람교, 돼지고기와 토끼고기를 못 먹는 유대교, 금식을 하는 서방 기독교 대신 빵과 포도주,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그리스정교회를 택했다. 티베트불교도 유사한 경우다. 불교는 살생을 금하는 교리로 인해 육식을 지양한다. 티베트는 7세기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고원지대여서 쌀, 설탕, 채소 등을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육식을 하는 독특한 불교를 만들어냈다. 훗날 중원을 차지한 몽골인들도 원나라를 세운 뒤 육식을 포기할 수 없어 티베트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음식의 영향은 근·현대사에도 이어진다. 18세기 제국주의 시대 영국은 막강한 해상력을 바탕으로 식민지를 늘려갔다. 그런데 영국 해군 뒤를 든든히 받친 것은 무기, 전술이 아닌 식량공급위원회였다. 당시 해군에게 가장 위협이 됐던 것은 괴혈병. 식량공급위원회는 감귤 즙을 만들어 해군에 보급하면서 괴혈병 발병률을 낮췄고 일주일 네 차례 제공되는 고기, 풍족한 맥주와 과일 등 식단을 구성해 병사의 사기를 높였다. 1700년 배가 바다에 머무는 시간이 2주에 불과했으나 1800년에는 3개월로 늘었다. 그리고 이는 바로 네덜란드나 프랑스 해군과의 전력 차로 나타났다. 영국 해군 역사가 N A M 로저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영국 함대의 해상 작전 수행 능력을 바꾼 것은… 무엇보다 식량공급위원회였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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