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주의 이행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하나같이 공·과(功過)가 있었다. 이 때문인지 어느 경우도 ‘대통령 지지도 하락 필연의 법칙’으로부터 예외는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도 그렇다. 그가 임기 전반에 누린 천정부지로 높았던 지지도(87%)와, 후반에 이르러 ‘외환위기’ 등으로 인해 곤두박질친 낮은 지지도(14%)의 기록을 깬 대통령은 아직 없다.
임기 초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이처럼 높은 지지도는 그가 군대 내 파벌 조직인 ‘하나회’ 해체를 비롯해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해 취한 일련의 개혁 조치들에 의해 뒷받침됐다. 역으로 이처럼 높은 국민적 지지도가 있었기에 그런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그가 추진했던 개혁에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4대 입법이 포함된다. 금융실명제, 정보공개법, 행정절차법, 공직자 재산등록제가 그것이다. 오늘날 지구표준인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 실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제도들이다.
이중 앞의 세 가지는 공직부패 방지를 위한 기반 조성에 해당하는 제도들이다. 금융실명제의 경우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 ‘정경유착’을 치유하고 자유시장경제 체제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의의가 있었다. 미국(1976)과 프랑스(1975)보다 20년쯤 늦었지만, 일본보다는 앞선 조치였다.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국정 운영에 대한 참여·감시·비판 증진에 기여하는 제도다. 미국(1966)과 프랑스(1978)보다 20~30년 늦었으나, 일본(1999)보다는 앞섰다. 행정절차법은 국민의 행정 참여와 권익 보호, 행정의 공정·투명·신뢰성 등 촉진에 기여한다. 미국(1946) 독일(1976) 일본(1993) 한국(1996) 순으로 제도화됐다.
네 번째의 경우, 즉 공직자 재산등록제는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상황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부정부패를 좀 더 직접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이 제도가 포함돼 있는 공직자윤리법은 1981년 말에 제정됐으나, 등록 사항 비공개와 처벌 규정 부재라는 치명적 결함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이 법이 등록·공개·심사·처벌의 틀을 갖춘 것은 김영삼정부 때다. 그가 1993년 2월 27일 취임과 더불어 재산을 자진 공개한 것이 촉발 기제가 돼 그해 5월 국회가 공직자윤리법 개정으로 화답한 것이다. 이 역시 미국(1978)이나 프랑스(1988)보다 다소 늦었으나, 일본(1999) 보다는 앞섰다.
그런데 이 개정안에도 허점이 있었다. 공직자 본인 및 배우자와 더불어 재산을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돼 있는 직계존비속 가운데 부양을 받지 않는 경우는 고지(告知)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대목이다. 서양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대목이다. 그러나 고래(古來)로 ‘치국평천하’에 비해 ‘수신제가’가 더 중시돼 온 우리 문화에서 부모의 ‘지나친 자식사랑’은 (부양 여부를 떠나) 금전 거래에도 긴밀히 연계돼 있다. 점차 거부하는 비율이 늘어나더니 지난해와 올해에는 신고 대상 고위공직자의 무려 27%(491명)가 부모나 자식의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 입법부가 더 심했다. 전체 국회의원의 37%, 특히 여당은 42%(66명)가 신고하지 않았다.
이런 허점이 있는 공직자윤리법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22년 전의 개정입법은 대통령의 솔선수범, 시민사회의 압력, 당시 보궐선거를 앞둔 국회의원들의 호응에 의해 가능했다. 마침 보선을 앞둔 지금, 이 세 부문 행위자들의 문제의식과 개혁의 실천 의지가 다시 발동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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