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궁, 미술관 나들이 때면 숱한 얼굴그림을 접하지만, 국내에선 인물화의 비중이 높지 않다. 그것도 불특정 인물의 좌상 위주로, 특정인의 얼굴그림은 드문 편이다. 회화 중 풍경화, 정물화에 비해 인물화는 감상과 수집의 대상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다. 초상그림보다 초상사진을 선호하고, 남의 얼굴그림을 걸어두고 즐기는 분위기가 아니라 미술시장에서 인물화는 저평가돼 왔다. 인물화는 전통 한국화에서 그 맥이 이어져 왔으나 역사인물의 영정그림 정도였다.


전시장에서 인지도 낮은 인물화는 그러나 일상에선 그 복사본이 적극 통용되는 친숙한 그림이다. 남녀노소가 대부분 인물화를 한두 점 이상 ‘소장’하고 있다. 유명 화가가 그린 인물화를 너나 없이 주고받으며 손으로 수시로 만진다. 지갑 주머니에 지니는 지폐와 동전 속 그림이 바로 유명 화가의 작품이다.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사용하는 지폐와 동전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휴대용 초상화’라는 이야기다.

현행 최고액권인 5만 원권의 신사임당, 5000원권의 이이 초상화는 이종상 화백의 작품이다. 이 화백은 1975년작 이이 초상화에 이어 2009년 신사임당 초상화를 맡아 모자지간인 두 인물의 얼굴그림을 잇달아 제작했다. 1만 원권 세종대왕과 1000원권 이황 초상화의 화가는 각기 김기창, 이유태 화백이다. 또 100원 주화 속 이순신 장군은 장우성 화백이 그렸다. 인물 초상화는 전통 영정기법을 전수한 화가들이 각종 사료를 참고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되살린 상상도다. 6년 전 공개된 5만 원권 신사임당 초상화를 제외한 나머지 그림은 1970년대 중·후반 선보였다. ‘화폐그림의 화가’ 중 이종상 화백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작고했다.

이 화폐그림 원본은 현재 한국은행 금고에 모셔져 있다. 이이, 신사임당과 이황의 초상화가 지난해 5∼6월 국립춘천박물관의 ‘초상화로 보는 강원의 인물’전에 등장했지만, 초상화 원본은 위폐 방지 등 보안 차원에서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다.

화폐 속 인물화가 알고 싶다면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39번지 고풍스러운 한국은행의 박물관서 국내외 지폐들을 전시 중이다. 각국은 “다른 소재에 비해 조금만 다르면 쉽게 알아볼 수 있어 돈의 위조와 변조를 막기 쉬워” 인물화를 화폐도안으로 활용한다. 화가 길버트 스튜어트가 그린 미국 1달러 화폐 속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쇼팽(폴란드) 간디(인도) 뭉크(노르웨이)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일본) 등 외국 돈에는 왕, 정치인, 예술가, 과학자 등이 등장한다. 화폐박물관의 2층 한은갤러리도 관람을 권한다. 정부의 미술장려정책에 힘입어 한국은행이 1950∼1970년대 사모은 소장품 중 ‘근현대 한국화 명품 30선’(5월 10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설악산의 가을을 그린 김은호의 ‘풍악추명(楓岳秋明)’, 한 소년이 오리떼를 몰고 가는 조중현의 ‘우중구압(雨中驅鴨)’ 등 근현대 우리 명화를 은행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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