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갑질’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갑을 관계의 실상은 물론 갑과 갑 사이의 싸움을 대놓고 보여주는 SBS 월화미니시리즈 ‘풍문으로 들었소’는 대를 이어 누려온 물질적 부와 명예를 지키려는 최상류층의 허위의식과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가문의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대한민국 최상류층 한정호(유준상)와 최연희(유호정) 가족과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중산층만 돼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재개발 열풍에 잘못 휘말려 하층민으로 전락한 서형식(장현성)과 김진애(윤복인) 가족이 사돈을 맺게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씁쓸한 웃음을 유발한다.
한정호의 믿음직한 아들 한인상(이준)과 서형식의 현명한 딸 서봄(고아성)은 스펙을 위해 참가한 영어 토론 캠프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고등학생으로서는 넘지 말아야 할 적정선을 넘는다. 수시전형 발표 뒤 재회를 약속했던 한인상은 서울대 법학과 수시전형 합격 통보를 받고 서봄을 찾아 나섰다가 그녀가 만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인상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만삭의 몸으로 따라 나섰던 서봄이 그 집에서 아들을 출산하면서 평범한 서민으로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던 최상류층의 세계에 균열이 발생한다.
평생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 앞에서 혼비백산하면서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한정호 부부의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은 최상류층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경제적으로 곤궁하다는 이유 때문에 최상류층 사돈 앞에서 주눅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돈의 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 서형식 부부의 모습에는 물질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서민의 초라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면에 어린 나이에 한 아이의 부모가 된 한인상과 서봄은 부모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한인상과 서봄이 부모세대의 허위의식과 속물근성을 폭로하고 바로잡을지, 아니면 그들 또한 부모세대가 만들어 놓은 질서 속으로 편입될지는 끝까지 지켜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서봄이 그들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지, 아니면 그들의 세계 속에서 용해될지 여부가 궁금하다. 객관적 관찰자의 시선 같기도 하고, 최상류층의 일원으로 인정받겠다는 욕망의 시선 같기도 한 서봄의 눈동자를 포착하는 매회 엔딩 컷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다만, 최상류층의 허위의식과 중산층의 속물근성이 버무려진 욕망의 세계를 바라보며 마음껏 비웃고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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