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대성이 말하자 양용식이 숨을 들이켰다. 한대성은 상대방을 비하하지 않는 사람이다. 더구나 욕을 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대성에게 욕을 얻어먹은 당사자는 일본 총리 아베다. 물론 이곳은 대통령 집무실이지만 양용식과 둘이 있다. 둘이 사담을 나누는 것이나 같다. 한대성이 말을 이었다.
“아베가 세상에 좋은 일을 한 가지 하고 있기는 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
“뭡니까?”
“잊어질 뻔했던 일본의 과거 행적을 기억에서 되살려 주고 있는 거.”
“과연.”
양용식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군요. 하마터면 100년 전, 70년 전의 일본을 잊을 뻔했습니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처참한 기억들이 망령처럼 이곳저곳에서 떠오르고 있어.”
“아베 덕분이죠.”
“100년 전, 일본 군국 시대에도 이런 식으로 국민을 끌고 갔을까?”
“글쎄요. 그것은…….”
“아베는 미국의 배경을 믿고 이러는 거야. 무슨 짓을 해도 미국이 밀어준다고 말이야.”
“안타깝습니다.”
오후 3시 반, 오늘은 한대성이 안보회의를 마치고 참석자들과 점심을 한 후에 방으로 양용식을 부른 것이다. 이제 4년 연임 법안이 통과된 데다 연임은 확정적이었으므로 정권은 가장 안정된 상태가 되어 있다. 임기가 5년 몇 개월이 남아 있는 셈인 것이다. 한 모금 커피를 삼킨 양용식이 한대성을 보았다.
“이것도 아베 덕분인데 일본이 과거 호전적인 지도자의 영향이나 지시를 받아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대성의 시선을 받은 양용식이 말을 이었다.
“간토대지진 때 간토지방의 조선인 수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일본 정부에서 성난 민심을 조선족이 방화, 강간, 살인을 했다고 꾸며 일본인을 선동한 때문이지요.”
“…….”
“지금도 인터넷을 클릭하면 그때의 참상이 다 나옵니다. 난징대학살과 비슷하지요. 아니, 이것은 일본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서 조선인들을 학살한 것이라 난징대학살보다 저 심각합니다.”
“…….”
“이것을 고려 말 기록으로 1년에 360여 회나 왜구가 침략해서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을 했다는 것과 연결시킬 수가 있지요. 고려는 왜구 때문에 망한 것이나 같습니다.”
“거기에다 임진왜란과 한일병합에 의한 식민지, 기가 막힌 역사 아닌가?”
말을 받은 한대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731부대를 기억하게 하는 전투기에 탑승한 선전 사진을 찍고 자위대법을 고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서 전범을 추모하는 그 행태로 아베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일본 국민의 지지도가 높습니다.”
한 모금 커피를 삼킨 양용식이 가라앉은 시선으로 한대성을 보았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지도자가 국민의 수준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머리를 끄덕인 한대성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아베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나는 일본이 우리의 우방이며 미국 다음가는 동맹국이라는 생각을 했어.”
머리를 든 한대성이 양용식을 보았다.
“그건 나뿐만이 아닐 거야. 이제 일본은 적국이 되어가고 있어. 아베 때문에.”
그때 양용식이 말했다.
“하지만 예전의 한반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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