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 차원의 청구권 협정에 따라 지불한 돈으로 건설된 포스코 등을 공적개발원조(ODA) 사례로 들며 홍보한 것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다. 한국 외교부가 사실 관계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인으로서 세종대 교수로 재직 중인 호사카 유지(保板祐二) 교수가 2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일본 외무성이 ‘전후 시대의 국가건설, 책임 있는 파트너로서의 일본’이란 제목의 홍보 동영상에서 한국과 관련해 ODA 사례로 포스코와 소양강댐 건설 등을 사례로 든 것을 말한다.
호사카 교수가 사실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할 만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과거사 왜곡은 분명하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뿌리를 둔 ‘일본의 전후 아시아(한국) 경제발전 기여론’은 실제 객관적 사실과 통계를 볼 때 근본부터 흔들린다.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지원한 돈은 ODA가 아닌 배상금으로 성격이 완전 다르고, 일본이 제공했다는 ODA는 거꾸로 “아시아인들이 일본을 먹여 살리는 구조를 만들었다”(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점에서다. 양 교수는 “포스코, 경부고속도로는 일본이 청구권 협정에 의해 전후 보상 성격으로 한국에 지불한 것으로 ODA와는 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ODA도 본질은 실제로는 ‘지원’이 아니라 ‘일본 기업진출을 위한 마중물’로 작용했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50년간 한국의 대일무역 누적적자가 지난해 기준 5000억 달러를 돌파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발간한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경제협력 성과와 과제’ 보고서에서 밝힌 통계수치다. 일본이 한국을 포함, 다른 나라들과 수직적 분업관계를 맺어 이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실이 일본으로 고스란히 옮겨가는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일본의 ODA는 일본기업진출을 마중물로 작용했고, 막대한 대일 무역적자가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이 때문에 실상은 일본이 지원한 게 아니라 아시아 국민들이 일본을 먹여 살리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안재욱(경제학) 경희대 교수는 “일본의 자화자찬성 주장은 아시아 각국이 경제성장을 위해 흘린 노력과 땀을 한순간에 일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오류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의 경우 막대한 ODA 차관을 아시아 시장에 퍼붓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과실(果實)은 모두 일본 기업들이 가져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이 한국에 지원한 돈보다 벌어간 게 훨씬 많다는 의미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東京)대 명예교수는 “일본은 한국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전쟁을 통해 가장 많은 경제적 이익을 챙긴 국가”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게다가 일본은 6·25전쟁 특수를 통해 망해가던 대기업들이 기사회생하는 계기를 잡았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이 그렇게 아쉬워했던 달러 자금을 대량 확보하게 돼 일본 자본 중심의 부흥 기회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전쟁 특수로 일본은 중화학공업에 필요한 자금을 축적하면서 공업생산을 확대시켜 자국 기업 위주로 경제부흥에 성공하게 됐다”고 밝혔다.
통계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6·25 전쟁 특수로 면포, 모포 등 섬유류와 트럭, 철강재 수출에 이어 전후 한국 부흥용 자재수요가 급증하는 등 톡톡히 재미를 봤다. 특수 관련 총 누계액은 33억7900만 달러로 1949년 일본 총수출의 6.6배에 달했다. 일본 실질경제성장률은 1949년 2.2%에서 1950∼1952년 3년간 연속 10%를 초과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서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은 6·25전쟁 특수 덕에 1955년 이후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고도성장 기반을 구축했다. 미국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아시아 각국에 대한 일본의 공적원조 제공을 인정한다고 해도 전쟁을 일으킨 국가가 스스로 평화와 번영의 창출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난센스”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에 힘입고, 외환법을 강화해 미국기업의 진출을 원천 봉쇄한 뒤 일본 기업 위주로 고도경제성장을 구가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송태정 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쟁과 경제(War and Economy)’라는 보고서에서 “일본은 패전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철강, 자동차, 조선 강국으로 부상했으며, 1970년대 중반 이후 경제 대국으로 평가받는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 외무성의 동영상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보다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명분으로 한국 등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8·15 아베 담화’를 위한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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