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170㎝도 안 될 것 같은 아담한 체구지만 목소리는 성우처럼 낭랑하다. (공식 프로필의 신장은 172㎝라고 나중에 보좌관이 알려줬다.)
대기실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마주치게 돼 잠깐 당황했다.
양복 차림이 아니라 마치 시장통 유세라도 다니는 양, 편한 감색 점퍼를 걸친 외양이 신선했다.
방금 일본 손님들과 투자 유치를 위한 회의를 서둘러 마치고 나오신 거라고 비서가 귀띔했다.
지난 1일 오후 4시 경기도청 신관 2층에서 만난 ‘작은 거인’ 남경필 경기지사의 첫 모습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여유가 넘쳤다. 먼 길을 가는 나그네처럼 느긋했다.
“여기서 할까요? 사진기자는 어디 계시죠?”
인터뷰 정도야 너무 익숙한 행사라는 듯 자신만만하게 그는 물었다.
원래 1시간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일정관리팀의 짠 배려 덕분에, 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더 보태자고 교섭했던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오후 6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의 서울 저녁 약속 때문에 어차피 수원을 떠나야 하니까 여의도의 경기도 서울사무소에 도착할 때까지 승합차 카니발 안에서 약 1시간, 사무소 건물 7층 탁자에 앉아 1시간, 이렇게 총 2시간가량의 인터뷰는 시작됐다.
인터뷰 = 노성열 전국부장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에,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장까지 역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왜곡에 대처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아니 박근혜정부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보나. ‘미국과 중국 양측에서 러브콜을 받는 축복’이란 견해에 동의하는가.
“이런 타이어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자동차 뒷자리에서 늘씬한 두 미녀 사이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커브길을 이리저리 달리니 남자가 오른쪽 여자에게 쏠리다가, 왼쪽 여자에게 쏠리다가 한다. 여자들이 진저리를 치며 남자를 밀어낸다. 이윽고 결심한 듯, 남자는 의자 아래를 꽉 잡고 단단하게 중심을 잡는다. 그러자 반대 상황이 된다. 양쪽 여자들이 남자에게 자꾸 몸을 기대게 되는 거다. 한참 길을 달린 후 서서히 카메라가 남자를 비추자 두 여자의 손을 다 잡고 환하게 웃는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중심을 잡아야 미·중도 따라오게 된다는 뜻 같았다. 남 지사는 곤란한 질문에 비유법을 자주 동원했다. 캐어물어도 “더 들어가지 말자”거나, “뜻은 새겨들으라”고 뒤를 흐리는 외교술을 구사했다. 5선 중진의원다운(31세 때부터 국회의원) 여유랄까, 관록이 느껴졌다.
―다시 여쭙겠다. 동북아에서 우리나라에 어떤 생존전략이 필요한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 생각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데 일본이 핵심 고리다. 복잡한 실타래를 풀려면 뭉친 한가운데의 첫 실마리를 찾아내야 한다. 나는 그게 일본이 아닐까 한다. 첫 번째 단추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남은 건 역사인식이고, 더 좁히면 위안부 할머니 문제라고 본다. 이걸 어떻게 풀지를 실질적으로 디테일하게 얘기해야 한다. 대통령이 안 나서도 된다. 서로 양쪽이 원하는 걸 알고 있으니까. 분명한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한 고통을 일본이 이해하고 사과한다, 이런 전제하에 타협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다. 이게 모든 걸 해결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나머지는 정상회담에서 풀 수 있다.”
―‘홍준표=무상급식 중단’이듯, ‘남경필=연정(聯政)’으로 기억되고 싶나.
“아니, 과정일 뿐이다. 종착지는 국민들이 편안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연정은 정치적인 수단일 뿐. 정치인들이 갈등을 유발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란 인식을 얻고 싶다. 대한민국의 정치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중심에 있던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싶다. 정치구조개혁가로 기억되고 싶다.”
그는 9개월 전 지방선거에서 여야 연정의 공약을 내걸고 당선 후 이를 실천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상 초유의 실험이다. 3명의 부지사 중 사회통합부지사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출신을 임명했다. 양당의 공약 중 공통분모를 추려 20개 항의 정책합의문을 작성했다. 부지사와 경기도의 양당 지도부, 도청 집행부로 연정실행위원회를 구성해 연정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정치 연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예산) 연정도 하려 한다. 3, 4일 이틀 동안 경기도 31개 시·군의 시장·군수와 도의회 상임위원장단, 도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합숙하며 내년 예산편성을 협의할 예정이다.
―내각제의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정부)’은 집권당 의석수가 부족할 때 야당과 각료 구성을 나누는 형태다. 서로가 아쉬워 손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비상시에도 이런 평화로운 동거가 지속될까. 핵심 가치로 다가가 부딪히면 결국 갈라서지 않겠나.
“통일 공부를 위해 독일을 배우면서 에르하르트 총리를 알게 됐다. 전후 독일의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해 강대국으로 키워낸 정치인이다. 광복 70주년이다. 한국 정치인도 앞으로 70년 갈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연정은 법에 없는 정치행위다. 처음엔 ‘그게 되겠어?’하는 냉소를 극복하는 게 힘들었다. 이젠 관심을 가져주는 게 고맙다. 전 세계에서 우리 정도의 권력집중이 된 나라는 미국, 칠레, 멕시코 정도다. 그런데 미국은 합중국이니까 지방정부와의 권력분산이 잘 돼 있다. 칠레는 개헌하기로 했고, 멕시코 정도인데…충돌이라? 아직 닥치지 않은 걸 걱정하는 건 기우다. 그럼 이렇게 반문해 보자. 정치, 이대로 가자는 건가? 만족하는가? 바꿔야지. 그런데 그동안은 그냥 물갈이만 했다. 공천 물갈이, 대한민국만큼 많이 한 나라가 있었나. 그래서 엄청난 정치 선진국이 됐나. 사람을 바꿔 정치가 바뀌었나. 제도의 문제다. 스트럭처의 문제다. 연정은 변화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거다.”
―핵심가치의 충돌, 예를 들겠다. 연정 정책에 산후조리원이 들어가 있다. 성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시장이 현실화해 벌써 논란이 생겼다. 부지사가 조리원을 추진하자고 하면?
“이제 협의해야지. 합의문을 몽땅 동시에 추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생활임금도 제한적으로 시작했다. 양당이 논의하면서 어느 정도 필요한지 충분히 협상하고 대화해야 한다.”
생활임금은 최저임금과 별개의 경기도식 복지제도다. 현재 공공 기관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남 지사는 민간 부문(기업 등)에 강요할 순 없다고 인정하면서, 경기도의 간접고용 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향후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점쳤다.
―최근 경기도를 남북으로 나누자는 ‘경기도 북부지역 분도(分道) 결의안’이 도의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분도를 반대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분도는 도 재정자립도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고, 남부에서 거둔 세금을 북부 개발에 투자할 여지가 사라지는 등 오히려 북부에 불리하기 때문에 분도보다 북부 규제합리화, 인프라 확충 등 남북 균형발전 방안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요새 ‘북경필’이란 별명이 생길 만큼 경기북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
―경기도는 지자체 차원에서 통일을 위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해왔다. 같은 입장인 강원도와도 손잡을 계획이 있다던데.
“우리 남북교류 기금이 전국 최대 규모다. 국제유소년축구대회 개최를 비롯, 18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해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등에 강원도와 공동 협력하기로 했다. 10일 최문순 강원지사를 만난다. 이달 말쯤 통일특구 및 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강원도와 맺을 예정이다.”
서울·수원=nosr@munhwa.com
정리=오명근 기자 omk@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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