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한다는 것 /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김재영 외 옮김 / 반니

“사람들은 피카소의 장밋빛 시대나 청기사파 같은, 미술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누가 이중 나선 구조나 쿼크 이론에 대해 그만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겠는가. 쇼펜하우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분명 교양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겠지만 볼츠만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사자도 개의치 않고, 다른 사람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과학사 교수의 한탄이다. 현대인의 교양목록에 과학이 들어가 있지 않음에 대한 아쉬움은 이어진다. “독일에서 교양인이라면 흔히 ‘차이트’니 ‘슈피겔’을 읽고, 연극을 보고 클래식을 듣거나 발저의 소설을 읽는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자연과학의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다. 작가와 화가의 작품은 잘 알지만, 물리학자나 생물학자의 이름은 거의 모른다. 안다고 해도 과학적 연구와는 무관하다. 아인슈타인은 덥수룩한 머리로 유명하고, 파인먼은 드럼 연주나 챌린저호 사건조사 위원회에서 반향을 일으킨 등장으로 유명하다.”

저자는 현대인의 교양이 예술과 인문 중심으로 짜인 이같은 현실을 ‘교양의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이유는? 현대 인류는 과학의 초대를 받은 손님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인류 문명의 기반을 제공했고, 가장 기본적인 식량부터 고급스러운 사치품까지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켰다. 인류를 이 자리로 초대한 ‘과학’을 손님이 박대하다니 예의 없기 이를 데 없다는 말이다.

저자의 이 같은 문제의식은 영화 ‘그래비티’, ‘인터스텔라’의 예상 밖 흥행에서 드러났듯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직관적 관심이 폭발하고 있지만 관심을 충족시킬만한 ‘교양으로서의 과학’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통찰이다.

2001년 독일에서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과학적으로 생각하기,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학의 역사, 우주, 물리, 원자(화학), 생명과 진화, 자연과학 혁명 등 과학의 전 분야를 다룬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각 분야의 과학 지식을 총정리한 흔한 교양 과학책이 아니다. 저자의 입장은 과학이야말로 우리 존재와 삶을 해석하는 ‘창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먼 역사에서 철학, 예술, 문학, 직관과 함께 공존했던 과학이야말로 현대인들이 삶을 총체적으로 사유하는 데 필요한 틀을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책은 과학이 일반인들에겐 근접하기 어렵고 전문적이며, 때로는 이해불가의 영역이 된 이유를 역사적으로 살피는것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주목한 지점은 코페르니쿠스의 시대다. 코페르니쿠스적 귀결이 우주에 대한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뤘지만, 이성을 예술과 감성에서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17세기 과학혁명은 과학을 인간으로부터 거리를 둔 무감각한 보편 이론의 자리로 국한시켰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관적 통찰, 신비한 직관, 개별적 감각은 과학과 이별하게 됐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뉴턴과 멘델이 열광한 연금술이 화학에 자리를 내주는 과정, 우주에서 인간사의 의미를 찾았던 점성술이 천문학과 결별하는 과정을 추적하며 연금술과 점성술의 ‘과학적 성격’을 복권한다. 연금술과 점성술이 ‘과학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연금술과 점성술이 당대 과학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철학적 토대를 살핀다. 연금술은 납을 바꿔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납 속에 들어 있는 금의 성질을 끄집어내 이를 자유롭게 한다는 개념으로 ‘내면의 자유’라는 철학과 연결되고, 점성술은 광활한 우주를 개인의 일상과 연결시키는 은유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지식이 쌓여 우주에 대한 설명이 정확해질수록, 우주는 우리 삶과 연결된 의미를 잃어버렸고 과학적 설명은 오히려 우리에게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주장하는 저자답게 책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괴테, 니체에 이르는 철학자, 셰익스피어와 괴테, 보르헤스의 소설, 릴케의 시가 인용되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쇠라의 점묘법이 어떻게 과학과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결론은 존재와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으로서의 과학, 예술로서의 과학이다. 이는 과학에 대한 이해를 적극적으로 시도해달라는 ‘일반 대중’에 대한 부탁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과학자들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더 크다. 개별 분야로 쌓은 전문화된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에서 벗어나 전체를 통찰하고, 사람들의 일상의 의미와 가치를 해석해주는 틀로서의 과학을 이야기해 달라고 말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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