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 유호식 지음 / 민음사

이 책은 자서전에 대한 연구다. 자서전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자서전을 쓰는지. 그렇다면 저자는 왜 자서전의 역사를 파헤쳤나. 과거 어느 때보다 ‘자기에 대한 글쓰기’가 빈번히 행해지는 시대라서다.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 등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쓰고, 또 드러내고 있다. 주말 오후에 직접 구워낸 빵, 어제 새로 산 구두, 선물 받은 립스틱, 흥건히 취한 술자리의 풍경, 밑줄 그어놓은 책 속 문장, 파란 하늘, 고향 가는 길의 단상, 친구와 마신 차 한 잔…. 수많은 ‘나’의 이야기들이 인터넷 속을 떠돈다. 자기 과시 혹은 노출증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이 행위들에 대해 저자는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다.

저자는 ‘자기에 대한 글쓰기’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것이며, 자아의 독창성을 인식하는 과정이며, 이러한 글쓰기가 자신을 변모시키는 계기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현대인들은 SNS를 통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 또한, 이것은 지난 수천 년간 역사 속에 등장해 온 ‘위대한 자서전’들과 방식이 다를 뿐 그 역할과 본질엔 차이가 없다.

책은 자서전의 정체와 현대적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로마, 성 아우구스티누스, 루소를 거쳐 20세기 작가 레리스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사례들을 탐색한다. 그러면서 “‘자기 고백’이 범람하는 SNS시대에 위대한 자서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창조적인 방법을 배우라”고 권한다. 보다 효과적으로 ‘나’의 삶을 디자인하기 위해서. “지나간 과거를 복구하기 위해 암중모색하는 과정에서 과거가 그의 탐색에 저항하면 할수록 과거를 탐색하고자 하는 욕망은 집요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삶의 무게가 이야기의 무게로 바뀌는 순간, 삶은 드디어 깊이를 획득한다. 그 깊이는 어쩌면 경험의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13쪽)

부제인 ‘서양 고전에서 배우는 자기표현의 기술’을 전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10명의 위대한 작가들(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몽테뉴, 루소, 샤토브리앙, 앙드레 지드, 사로트, 레리스, 사르트르, 포레)은 이 책의 핵심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스스로 성찰하기 위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의 ‘명상록’, 유럽 사회의 전통 중 하나인 종교적 자서전인 ‘고백록’(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을 지나, 자서전은 몽테뉴(1533∼1592)를 만나 극히 제한적인 지적 행위에서 개방된 글쓰기로 변모한다. “몽테뉴에 이르러 자서전을 쓰는 사람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의미인 구원의 소명을 받은 자도 아니고 도덕적 차원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평범한 인물로까지 확장된다. 자서전은 이제 어떤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은 한 개인의 기록이 된 것이다.”(171쪽) 그러나 저자는 ‘근대적 자서전’의 창시자로는 루소(1712∼1778)를 지목한다. “루소의 위대함은 자신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서사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제까지 제각기 다른 전통을 지니고 있던 종교적 자서전, 회고록, 자전적 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자서전에 수용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자서전을 기술하는 데 허구의 모델을 사용할 수 있음을 최초로 인식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186쪽)

책은 자서전이 문학 공간이 나르키소스적 체험 공간으로 변화하는 상황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장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SNS로 대표되는 현대의 광범위한 현상과도 맞닿아있다. “평범하고 심지어는 진부하기까지 한 일상성을 드러내는 탁월한 장르”인 것도 근대 이후의 자서전과 SNS 속 글쓰기의 공통점이다. 더불어, 자서전적 말하기 방식인 ‘고백하기’가 일종의 ‘유혹하기’가 될 수 있다는 점까지도. 즉, 우리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을 노출 시키는 거다. 이는 ‘자기에 대한 글쓰기’를 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