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허홍구 시인이 본 서울 광장시장
1000만 시민이 살아가는 거대도시! 수도 서울은 만원이다. 곳곳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가며 어디가 중심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서울의 중심은 종로다.
서울 수복 후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의 남대문시장과 함께 지어졌다는 종로 5가의 광장시장은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옛날에는 3일장, 5일장 등으로 장이 섰지만 광장시장은 상설시장이었다. 애초에는 청계천의 광교와 장교 다리이름의 첫 글자를 따와 광장(廣長)시장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1905년 시장의 이름을 동대문시장으로 등기를 하는 바람에 동대문시장으로 불렸고, 그 후 널리 모아 간직한다는 뜻을 새로 담아 현재의 광장(廣藏)시장이 되었다. 조선후기에는 명주, 종이, 어물, 모시, 비단, 무명을 팔던 육의전(六矣廛)의 장터였으며, 특히 두산그룹 창업자가 이곳에서 비단 장사로 창업의 터전을 닦았다.
광장시장은 정치 깡패 이정재가 유지광·임화수 등 조직원들을 거느리고 초대 동대문시장 상인연합회 회장 겸 납세조합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활동했던 무대이기도 하다. 또 시장 건너편 평화시장 앞에서는 미싱공으로 일하던 22세의 노동자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목숨을 불사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시장이나 국회의원, 대통령에 출마한 모든 후보들이 빠뜨리지 않고 찾아 장터의 이야기를 듣거나 민심을 살펴보고 지지를 호소했던 광장이기도 하다. 시장은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원단과 포목의 집결지로 이름을 날렸으며 섬유도시였던 대구도 덩달아 함께 호황을 누렸다.
내 고향은 경상도 대구(大邱)다. 직장 따라 서울에 와서 눌러 산 지 30년이 되어간다. 고향 떠난 객지에서의 삶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경쟁하듯 살아가는 도회의 삶은 더욱 그러하다.
기뻐 박수치며 환호하는 순간은 잠깐이고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슬퍼 눈물 흘리며, 실망하고, 분노하고 그러면서 다시 일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니겠는가? 사는 일이 어디 즐겁기만 하던가? 쓸쓸하고 까닭 없이 눈물 날 때도 있고 때로는 맘속에 손볼 누군가를 담아둔 채 살기도 한다.
그 같은 심정이 들 때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기 이 광장시장에서 슬픔과 분노를 삭이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 보면 어떨까.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에 꼭 두어 시간을 걷는다. 이게 나의 유일한 운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걸으면서 사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생(生)의 에너지도 충전한다.
4월의 봄길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상처받은 우리들을 따뜻하게 품어 줄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도심 속 산책길로는 누가 뭐라 해도 시장 길이 으뜸이다. 종로통이나 청계천 길을 걷다가 그냥 광장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치열하지만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살펴 볼 수가 있다. 가끔 지방에 있는 친구들이나 문인들이 서울 왔다가 날 찾아오면 나는 어김없이 이 광장시장으로 데려간다. 멋있는 식당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좋겠지만 함께 부담 없이 찾아 내 단골집인 홍천댁, 은성횟집 등에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따뜻한 맘을 나누고 헤어진다.
모두가 최첨단, 대형화, 고급화를 외치며 더 크고, 더 아름답게 포장을 하고 바뀌어 가는데도 오래된 그대로의 모습으로 묵은 향기를 풍기는 장터가 바로 이 광장시장이다. 광장시장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안다. 그들 자신에게 맞는 환경에 적응하며 최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가까운 주변엔 동대문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청계천, 평화시장, 동대문종합시장, 신진시장, 종묘와 창덕궁, 시계골목, 오래된 헌책방 골목, 청계천 건너 방산시장, 종로5가 지하상가의 한복 맞춤가게들, 보령약국을 비롯한 밀집된 약국과 의료기기상회 등이 있다. 광장시장은 8개의 큰 문이 활짝 열려있고 어느 문으로 들어와도 다 통한다. 최근에는 서울시관광협회에서 외국 관광객들을 위해 빨간 제복의 안내원이 밀려오는 관광객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서문으로 들어서면 2층에 구제의류 상가가 있고 일본·미국·이태리 등 외국의 구제의류가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 안쪽으로 쭉 들어서면 밝고 화려하게 펼쳐지는 포목(한복), 직물(양복·양장지) 가게가 넓고 길게 펼쳐져 있으며 저렴하고 다양한 한복을 직접 맞추어 입을 수 있는 좋은 곳이지만 시장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을거리 골목으로만 모여든다. 광장시장 만남의 광장에서 남1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명절에 필요한 제기와 제수, 신선한 재료, 맛있는 음식, 추석빔까지 한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다. 시장의 반찬가게는 젊은 부부들에게 인기가 있다.
광장시장의 남2문과 남3문 초입에서는 미싱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곳의 수선가게는 세탁소에서 하는 기본 줄임은 물론 패턴에 따른 옷 만들기, 구제의류 리폼, 커튼·소파 천갈이, 밍크, 피혁 수선 등 맞춤 기능까지 못하는 일이 없다. 또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상인들에게 커피를 배달 판매하는 커피아줌마, 1만5000여 기존 상가의 상인과 시장 통로 좌판에서 장사하시는 상인들의 삶을 지켜보다가 옛날 대구 칠성시장 난전에서 능금 장사하셨던 어머니 생각에 맘이 울컥해졌던 때도 있었다.
동문 쪽 먹을거리 골목으로 자리를 옮기면 박가네 빈대떡집을 비롯한 여러 빈대떡집, 10여 가지의 반찬을 골라 함께 비벼먹을 수 있는 보리밥 뷔페집, 요즘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마약김밥(마약처럼 입맛을 당기게 한다는 김밥이름), 죽집, 먹을거리 공간 중심에 있는 경태네, 자선댁을 비롯한 순대족발집들, 은성횟집 등지의 얼큰한 매운탕 등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먹을거리가 차려져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뿐이겠는가? 잡화상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우리의 전통시장이다.
끝으로 꼭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는 이 광장시장은 먹을거리만을 파는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먹을거리 장터에서 머물며 북적거리는 인파에 휩쓸려 다양한 먹을거리를 맛본 후 한국 최고의 전통시장을 둘러보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가까운 중앙시장이 전국 곡물의 집하장이라면 중부시장은 건어물의 중심시장이며 여기 광장시장은 포목과 원단 주단의 중심시장으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태어나서 입고 먹고 치장할 때 필요한 것들과 나중 이승을 떠날 때 입는 수의 및 제기 제수용품까지 한마디로 없는 것 빼고는 다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제일의 전통시장이다.
이제 1000만 명 이상의 외국 관광객들이 우리나라를 찾으면서 이곳 광장시장은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에게 잊히지 않는 한국의 명소로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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