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훈 前 청와대교육문화수석

1960년대 중반 경기 양평에 사는 16세 소년은 읍내에 들어온 남사당패의 신명 나는 장단에 흠뻑 빠졌다. 그는 이후 한국국악예고에 들어가 국악을 공부하고, 중앙대 음대에 입학해 서양음악을 익힌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생활 속의 국악’ 운동을 펼치며 장르를 넘나드는 곡들을 잇달아 내놔 주목을 받았다. 88올림픽 개막식, 2002월드컵 개막식 등에서 음악을 담당함으로써 국악계의 대표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박범훈(67·얼굴) 전 청와대교육문화수석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요즘 중앙대 부총장, 청와대 수석 시절의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으며 이목을 다시 끌고 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서울국악유치원과 국악중학교를 설립했으며, 중앙대에 국악대학을 신설하는 데 앞장섰다. 국악대 교수로서 부총장을 거쳐 총장에 오른 그는 중앙대 홍보와 마케팅에 직접 나섰고, 두산그룹이 대학을 인수한 후 학과 통폐합과 교수 연봉제 등을 추진했다.

대학 개혁을 부르짖던 그가 ‘폴리페서’ 논란에 휩싸인 것은 총장 재직 당시에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 문화예술정책위원을 맡았기 때문이다. 2008년 초엔 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았고, 2011년에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2년간 교육문화수석비서관으로 활동했다. 대학 총장을 지낸 그가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을 맡은 것과 관련해 억측이 구구했는데, 이번 수사를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문화계 거장인 그가 정치권력과 얽히는 과정에서의 처신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국악계의 한 인사는 “그가 젊었을 때 철학자 김용옥 씨 등과 함께했던 ‘악서고회(樂書孤會)’의 고(孤)자를 새겼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인사는 “그가 정치적 공격의 희생양이 됐을 뿐이기 때문에 모든 혐의를 벗고 명예 회복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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