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核협상’역사
아마디네자드 때 악화
중도파 로하니 집권이후
2013년부터 마라톤협상
이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이란과 서방의 갈등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8월 미국 워싱턴에서 이란의 반정부 단체인 ‘국민저항위원회(NCRI)’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 정부가 핵무기 개발 등 군사적 목적으로 나탄즈에서 실험용 및 상용 우라늄 농축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란 정부는 이 시설이 원자력 발전 시설이라 주장했지만, 서방 국가들은 석유 매장량(세계 4위)과 천연가스 매장량(세계 2위)이 풍부한 이란에서 원전을 도입할 필요성이 적다며 이란의 핵 개발 의도 및 동기를 의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2003년 6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핵활동보고 의무 불이행을 지적하면서 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와의 갈등이 공식 시작됐다.
이런 가운데 2005년 6월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사태는 더욱 악화하기 시작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핵 개발은 침해받을 수 없는 고유의 권리”라고 강조했으며, 그해 8월 이스파한에서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 재개’를 발표했다. 2006년 이스파한 우라늄 변화시설의 봉인을 해제하면서 2004년에 맺었던 유럽연합(EU)과의 농축 유예 합의도 파기됐으며, 긴장 수위는 크게 높아졌다.
결국 미국 주도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12월 이란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2010년 6월까지 총 네 차례 결의안을 채택해 제재를 강화했다. 하지만 아마디네자드 정권은 ‘우라늄 농축시설 10곳을 추가로 증설한다(2009년)’ ‘20% 농축 우라늄을 50㎏ 이상 생산했다(2011)’고 발표하는 등 계속해서 맞불 작전을 펼쳤다.
해빙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2013년 8월 하산 로하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보수 강경파에서 중도파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2013년 10월 제네바에서 첫 주요 6개국과 이란 간의 협상이 시작됐다. 3차 협상 끝에 2013년 11월 합의안이 도출됐으며 ‘20% 농축 우라늄 절반 희석’ ‘연 플루토늄 생산량 8㎏에서 1㎏으로 절감’ 등이 실현됐다. 평화적 분위기와 함께 정치적인 협상 단계가 시작됐으며, 2014년부터 조금씩 미뤄지던 협상 은 2015년 3월 26일부터 스위스 로잔에서 ‘마라톤협상’을 진행한 끝에 2일 공식적으로 타결됐다. 이로써 12년 만에 국제사회의 핵심 불안 요소 중 하나였던 이란 핵 문제의 해결로 역사적인 초안을 마련하게 됐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
중도파 로하니 집권이후
2013년부터 마라톤협상
이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이란과 서방의 갈등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8월 미국 워싱턴에서 이란의 반정부 단체인 ‘국민저항위원회(NCRI)’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 정부가 핵무기 개발 등 군사적 목적으로 나탄즈에서 실험용 및 상용 우라늄 농축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란 정부는 이 시설이 원자력 발전 시설이라 주장했지만, 서방 국가들은 석유 매장량(세계 4위)과 천연가스 매장량(세계 2위)이 풍부한 이란에서 원전을 도입할 필요성이 적다며 이란의 핵 개발 의도 및 동기를 의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2003년 6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핵활동보고 의무 불이행을 지적하면서 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와의 갈등이 공식 시작됐다.
이런 가운데 2005년 6월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사태는 더욱 악화하기 시작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핵 개발은 침해받을 수 없는 고유의 권리”라고 강조했으며, 그해 8월 이스파한에서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 재개’를 발표했다. 2006년 이스파한 우라늄 변화시설의 봉인을 해제하면서 2004년에 맺었던 유럽연합(EU)과의 농축 유예 합의도 파기됐으며, 긴장 수위는 크게 높아졌다.
결국 미국 주도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12월 이란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2010년 6월까지 총 네 차례 결의안을 채택해 제재를 강화했다. 하지만 아마디네자드 정권은 ‘우라늄 농축시설 10곳을 추가로 증설한다(2009년)’ ‘20% 농축 우라늄을 50㎏ 이상 생산했다(2011)’고 발표하는 등 계속해서 맞불 작전을 펼쳤다.
해빙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2013년 8월 하산 로하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보수 강경파에서 중도파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2013년 10월 제네바에서 첫 주요 6개국과 이란 간의 협상이 시작됐다. 3차 협상 끝에 2013년 11월 합의안이 도출됐으며 ‘20% 농축 우라늄 절반 희석’ ‘연 플루토늄 생산량 8㎏에서 1㎏으로 절감’ 등이 실현됐다. 평화적 분위기와 함께 정치적인 협상 단계가 시작됐으며, 2014년부터 조금씩 미뤄지던 협상 은 2015년 3월 26일부터 스위스 로잔에서 ‘마라톤협상’을 진행한 끝에 2일 공식적으로 타결됐다. 이로써 12년 만에 국제사회의 핵심 불안 요소 중 하나였던 이란 핵 문제의 해결로 역사적인 초안을 마련하게 됐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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