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대일강화조약 회의에서 당시 요시다 시게루(가운데) 일본 총리가 연합국(49개국 참가)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의 조선땅 반환’ 내용 등을 담은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이 강화조약에 한국은 참여하지 못했다.  문화일보자료사진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대일강화조약 회의에서 당시 요시다 시게루(가운데) 일본 총리가 연합국(49개국 참가)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의 조선땅 반환’ 내용 등을 담은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이 강화조약에 한국은 참여하지 못했다. 문화일보자료사진
과거 ‘대동아 공영권’ 미화
상처 치유보단 분칠에 급급
패권확대 야심 속속 드러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과거사 부정과 오만한 역사인식은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각축 과정에서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이 동아시아 패권 쟁탈전이라는 ‘현실’에 적극 편승함으로써 ‘감추고 싶은 과거’에 분칠을 시도할 것이라는 얘기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속도와 미래를 내다본 치밀한 시나리오를 감안할 때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이는 의지와 상관 없이 미·중 쟁투의 영향권에 놓일 수밖에 없는 한국이 외교 측면에서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가는 전략과 지혜가 요구됨을 의미한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 운명공동체론’을 내걸고 패권 확대를 공식화한 것을 언급하면서 “장기적으로 일본이 이에 대항하는 동아시아 평화·연대 구상을 꺼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위안부 관련 망언, 난징(南京) 대학살 부인 등으로 대표되는 역사 왜곡이 ‘보통국가화’를 위해 일본 내부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조장하려는 시도였다면 앞으로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일본이 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국면이 펼쳐지는 만큼 앞으로의 역사 왜곡은 내부가 아닌 외부를 향한 팽창주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조 교수는 “일본은 과거에도 동양주의와 아세아주의를 거쳐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논리로 대륙 침략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었다”며 “미·중의 패권 싸움 속에서 결국 일본이 과거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분칠만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나아가 중국의 ‘아시아 운명공동체론’과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 간의 충돌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불꽃 튀는 패권 싸움이 벌어진 상황에서 과거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최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둘러싼 논란은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 헤게모니 쟁탈전의 민낯을 보여줬다. AIIB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건설 구상)’와 함께 시 주석이 내놓은 ‘아시아 운명공동체론’의 양대 축이다. 미·중은 AIIB 설립을 둘러싼 이견을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참가국을 놓고 빼앗고 빼앗기는 장면을 노출했다. 윈윈은 없었고, 결국 AIIB 싸움은 중국의 완승으로 끝났다.

호주부터 한국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동맹국들이 한결같이 실리주의를 명분 삼아 잇따라 AIIB 가입을 결정했음에도 일본이 끝내 불참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을 중국의 팽창에 맞서는 교두보로 삼았던 미국의 ‘대위(代位)’ 전략에 앞으로도 충실하게 복무하며 또 다른 실리를 취하겠다는 일본의 전략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을 통해 일본이 지금까지 집단적 자위권 인정과 평화헌법 개정 등의 실리를 취했다면 앞으로 그 목록에 ‘과거사 족쇄로부터의 해방’이 추가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 정부와 정치권 내에서 한·일 간의 과거사 갈등에 대한 피로감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 불안한 징조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설득과 한·미 공조 강화를 통해 한·일 과거사 갈등을 해결하려는 외교안보당국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오남석·신보영 기자 greentea@munhwa.com

관련기사

오남석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