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연소답청’. 그림 속 기생은 장죽을 물고 있다.
신윤복의 ‘연소답청’. 그림 속 기생은 장죽을 물고 있다.

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한 모금/ ― 후욱 ―/ 가슴속으로 빨아들이는 불,/ 육신은 밥으로 살지만/ 정신은 불로 산다./ 용암을 빨아들여/ 화안히 등불을 켜든 꽃처럼/ 내 원고지의 빈칸을 밝히는/ 하늘의 불”(오세영, ‘담배’ 중에서)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알리라. 날카로운 칼날로 뇌의 주름진 잎들을 한 장 한 장 발라내는 듯 끔찍한 고통의 순간에는 차라리 악마와도 손잡고 싶음을. “한 모금/ ― 후욱 ―” 이 감각적인 표현은 악마가 내민 손의 이름을 단숨에 환기시킨다. 바로 담배다. 시에 따르면, 담배는 정신이 먹는 밥이고, 용암을 빨아들여 가슴에 피는 꽃이고, 천상에서 내려와서 원고지의 빈칸을 밝히는 불이다. 그런데 담배를 예술적인 영감의 도구이자 상징으로 여기는 이러한 생각은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조선에 담배가 도입된 직후부터였다. 담배는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시인묵객들의 애호품이 되었으며, 창작의 고민을 달래는 벗으로 격상되었다. 영조 때 문인 이덕리는 말한다. “시는 지었으나 미처 다듬지를 못했고, 장편의 글은 썼으나 아직 꺽꺽하다. 붓을 잡고 고쳐 쓸 힘도 다 빠져서 턱을 괸 채 무료하게 앉아 있다. 그때 여의(如意)의 담배를 잡자마자 생각이 용솟음친다. 언뜻 기묘한 발상이 튀어나와 화려한 말이 뭉게구름 피어오르듯 일어난다.”

안대회의 역작 ‘담바고의 문화사’는 지식의 잊힌 공백 중 하나인 ‘담배’를 통해 조선 후기의 사회 문화사를 복원한다. 위와 같은 인식의 기원을 비롯해, 손님을 모시면 담배부터 권하는 대객초인사(待客初人事), 밥 먹은 후 곧바로 담배부터 입에 무는 식후제일미(食後第一味), 어른과는 한자리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맞담배 금지, 윗사람이 담배를 피우려 하면 아랫사람이 재빠르게 불을 붙여주는 ‘불 상시 대기’ 등의 담배 예절이 언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알아가는 소소한 즐거움이 넘치는 책이다. 또한 “붉은 루주가 묻은 담배꽁초는 섹시하다”라고 여전히 한 시인이 읊었듯이, 『춘향전』과 같은 소설이나 신윤복의 그림 등에서 장죽을 문 여인들이 왜 등장하고, 흡연이 여인의 염정을 증진하는 연애의 수단으로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작품의 구체성 속에서 통찰하는 커다란 기쁨을 주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소중함은 ‘담배’라는 작은 사물을 통해서 세계체제로 편입되면서 격렬하게 변화해 가는 조선 후기의 역사를 “거울처럼 반영”했다는 데 있다.

1610년 무렵, 부산 동래에 설치된 일본 왜관을 통해서 조선에 담배가 들어왔다. 아메리카 대륙의 특산품이자 ‘대항해 시대’의 대표적 산물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마침내 동쪽 끝까지 이른 것이다. 이 장면은 첫 번째 세계화가 일상에서까지 완결되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담배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불과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담배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서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는 “기호품의 제왕”이 되었으며, 병자호란을 계기로 여진족으로 전해지면서 피폐한 조선 “경제의 블루오션”으로 청나라에 대한 최대 수출품 중 하나가 되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조선 후기 300년 동안은 ‘담배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담배는 문화와 예술, 사회와 경제, 의식과 풍속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담배, 문헌상으로는 ‘남초(南草)’라고 더 많이 불린 이 신비한 풀은 도입 초기부터 ‘금지와 예찬’을 놓고 격론의 대상이 되었다. 이 격론은 단지 담배의 해악을 둘러싼 사회 의학적 논쟁에 그치지 않고, (적어도 금지 쪽에서 볼 때에는) 서양의 부상과 동양의 몰락에 대한 예감을 품고 있기에 더욱 주목할 가치가 있다.

사실, 금지의 직접적 이유는 오늘날과 비슷하다. 담배는 건강을 해치고 불결하며 미풍양속을 타락시키고 실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 등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다르다. 담배를 “서양의 불기운이 동양으로 침범한 상징”으로, “사술과 외도가 만연한 시대”에 나타나는 변괴의 일종으로 여겼다. 특히 성리학자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저자에 따르면, 그 뜻이 이어져서 위정척사파의 핵심을 이루었으며 결국 1907년 금연을 통해 모은 돈으로 나랏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켜 일제에 저항하는 한 중심이 되었다.

애연가들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군왕인 정조를 비롯해서 장유, 이옥, 정약용, 심노승, 조희룡, 황현 등 당대의 골초 문사들이 반론에 나섰다. 다산은 “담배야말로 유배객에게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하면서 “가만히 빨아들여 향기에 젖어 들고/ 슬며시 내뿜어 연기가 피어나네”라고 운치 있는 표현을 남겼다. 한편, 정조는 무더울 때는 더위를 물리쳐 주고, 추울 때는 추위를 가셔 주고, 밥 먹을 때는 소화를 도와주고, 변을 볼 때는 악취를 막아 주고,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잠이 오게 해 주고, 시를 읊거나 문장을 지을 때는 영감을 일으켜 주고, 남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는 말문을 틔워 주고, 조용히 앉아 있을 때는 고독을 달래 준다면서 담배의 유익함을 역설했다. 심지어 정조는 개인 취향이 지나쳐서 모든 백성들이 담배를 피우게 할 대책을 제시하라는 황당한 문제(「남령초 책문」)를 신하들에게 출제하기도 했다. 물론 심환지 등 신하들은 다음 날 출근을 ‘고의로’ 기피함으로써 이 일을 해프닝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담배를 둘러싼 풍경은 때때로 사회사를 넘어 정치사의 영역으로 이어지면서 조선 후기의 지적 풍경을 재현하는 요긴한 수단이 된다.

『담바고의 문화사』는 담뱃대와 썬 담배를 중심으로 한 찬란한 흡연문화를 통해 조선 후기의 역사를 정치경제에서 일상문화까지 고루 넘나들면서 한 줄로 꿰어낸다. 그리고 그 휘황함이 소멸하고 이를 대신해 일제를 등에 업은 권연(卷煙, 말아 피우는 담배)의 시대가 열리면서 막을 내린다. 광복 70주년의 해에 그 급작스러운 소멸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더 슬프고 아리다.

장은수 <출판평론가 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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