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김시덕 지음 / 메디치

우리에게 ‘임진왜란’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지난해 개봉돼 17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명량’의 영향으로 왜적에 맞서 싸운 이순신 장군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조선·명·왜의 국제전쟁으로 본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 지역의 전쟁사를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교수인 저자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임진왜란을 바라본다. 그에 따르면 이 전쟁은 ‘해양과 대륙의 충돌’이다.

한반도는 해양과 대륙, 모두와 접하고 있다. 위로는 한인 세력(지금의 중국)이 있었고, 아래로는 왜(지금의 일본)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전 한반도를 지배하던 국가들은 거대한 영토를 배경으로 압도적인 군사력과 우월한 문화적 자원을 갖춘 한인 세력이 강요하는 불리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정권이 바다를 건너 20만 대군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조선은 한반도에서 대륙과 해양을 절충할 교섭권을 쥐게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후 한반도는 항상 대륙과 해양의 격전지였다. 17세기 초 정묘·병자호란 때나 1910년 한일 강제병합 때에도 조선은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며 독립과 번영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시도는 대개 실패로 끝났지만 1945년 광복 이후 미국·일본 등 유라시아 동부의 해양 세력과 중국·러시아 등 여러 대륙 세력 간 길항 관계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대한민국은 성장해왔다.

그리고 한반도는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유라시아 동부의 국제적 동향을 무시하고 중국 혹은 미국과 같은 어느 한 나라의 일방적인 영향력에 편입돼 살 것인가, 혹은 해양과 대륙 세력 사이에 자리한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복잡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힘들지만 자립하고 번영하는 세력으로 살 것인가.

한반도는 해양과 대륙의 대결 구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가진 곳이다. ‘해양과 대륙의 격돌 사이에서 양극을 조정할 수 있는 힘, 이것이 우리가 절실하게 추구해야 하는 길이며 이 책은 한반도의 사활을 건 미래 전략을 짜는 데 있어 필독서가 될 것’이라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추천사는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가 가리키는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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