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세계유산 등재 땐 문화관광산업에 경제 효과”
주민들 “집수리 못해 불편… 現시세 반영해 빨리 보상을”
“왕궁터라면서 팠는데 나온 게 뭐가 있나요.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데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서로 싸우고만 있으니 답답합니다.”
2일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2구역에서 만난 주민 김모(52) 씨는 문화재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이 떠안고 있는 상황에서 주무기관인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입장 차이만 보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성백제(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의 왕성터로 알려진 풍납토성의 보존 및 개발을 둘러싸고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4개월째 팽팽한 입장 차이를 빚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난 1월 풍납토성 주민의 전체 외부 이전이라는 정책 기조를 바꿔 일부 지역의 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풍납토성 보존·관리 및 활용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갈등이 본격화됐다. 이에 따르면 문화재 지정을 통한 토지보상 권역을 현행 2·3권역에서 2권역(핵심권역)으로 축소 조정하고 3권역의 건축높이는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조례와 일치시켜 21m(7층)로 완화했다.
◇문화재청 입장 = 문화재청의 이 같은 선택에는 보상에 드는 예산과 보상기간 등에 대한 현실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풍납토성 주민 이전에 따른 보상비용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가 70%, 서울시가 30%를 부담한다. 문화재청은 1993년부터 현재까지 20여 년간 4866억 원을 투입해 문화재 지정면적(35만6692㎡)의 72%를 매입 완료했다. 풍납토성의 2·3권역 전체를 문화재로 지정해 토지를 보상할 경우 약 2조 원(보상기간 약 40년)이 소요된다.
문화재청은 “보상비도 많이 드는 데다 보상완료 후에도 풍납토성의 명확한 성격규명을 위한 발굴조사에 5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돼 풍납토성의 보존 및 정비 기본방향에 재정립이 불가피한 실정”이라면서 “재산권 제약에 따른 주민 불편을 해소하고 풍납토성과 주민이 상생하는 역사문화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수정된 안에 따르면 보상비용은 약 8000억 원으로 당초보다 1조2000억 원이 줄어들며 보상기간도 약 20년 단축할 수 있다.
◇서울시 입장 = 서울시는 문화재보존과 주민보호 차원에서 문화재청의 대책이 타당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어려워졌다”면서 “주민보호를 위해서라도 5년 내 3권역을 포함한 조기보상을 제안하며 부족한 예산은 지방채를 추가 발행해서라도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오는 6월 충남 공주·부여와 전북 익산의 백제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이와 연계해 풍납토성의 ‘확장 등재’를 고려 중이다. 등재가 성사되면 국격 상승과 더불어 문화관광 산업 확대에 따른 경제 활성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전망이다.
◇지지부진한 협의 및 발 빼기 = 문화재청과 서울시 송파구청 등 이해 당사자들 간의 협의체 구성, 주민간담회 등도 하고 있으나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2011년 9월부터 풍납동 주민대표들, 문화재청, 서울시, 송파구청, 문화재위원 및 전문위원, 도시계획전문가 등 16명으로 구성된 ‘풍납토성 보존관리 소위원회’가 현재까지 12차례 회의를 가져왔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급기야 지난 1월에는 문화재청 단독으로 해결책을 발표해 또 다른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 송파구청은 손을 빼는 모양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주민들의 보상 접수를 받아 문화재청에 심의 요청하는 역할로 주민과 문화재청을 연결하는 중간고리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주민들 입장 = 이런 가운데 주민들의 불만은 커져만 가고 있다. 풍납토성 내 거주하는 주민들은 총 1만8000여 가구, 약 4만8000명이다. 백제 왕성터로 추정된다며 1963년 1월 풍납토성이 사적 제11호로 지정된 이후 개발이 제한되면서 집값도 인근 지역에 비해 많이 떨어졌고 집수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다.
주민들은 유적 보호라는 가치에는 동의하지만 수십 년 넘게 발굴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보상 대책이 없어 불만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일부 의견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조기 보상과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보상 신청 순번이 360번인 2구역에 거주하는 주민 김채옥(여·73) 씨는 “문화재 때문에 집 수리 등을 못하는 데다가 집도 안 팔린다”면서 “순번상 6년은 더 기다려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보상금액도 근처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저평가 된 만큼 현시세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 시세는 평당 1650만 원에서 최고 2450만 원 정도인데, 이곳의 시세는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주민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조기 보상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까지 보상을 신청한 주민 700명을 보상하는 데만 20년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
◇복합 갈등, 주민 설득 필요 = 전문가들은 여러 갈등이 뒤얽힌 복합갈등으로 분석하고 이해 당사자들 간에 명확한 설명과 주민 설득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중앙정부(문화재청)와 지방자치단체(서울시)의 갈등이 얽힌 복합 갈등”이라면서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에 발생하는 이득에 관해 수익을 적절히 분배한다든지 중앙과 지방이 소통하고 유기적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고서정 기자 himsg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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