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상처를 입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그 상처를 치유하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삶의 지혜가 쌓이고 서서히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것이다. KBS 2TV 수목미니시리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여성 3대의 상처 치유기이다.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었던 남편 김철희(이순재) 때문에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강순옥(김혜자), 획일적인 교육 환경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혀 고등학교를 미처 마치지 못한 채 퇴학당하면서 인생이 뒤틀린 김현숙(채시라) 모녀는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와 별개로 내면 가득 상처가 많은 인물들이다.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던 강순옥과 김현숙은 그녀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김철희가 사랑했던 여자 장모란(장미희)과의 우연치 않은 만남을 계기로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게 된다. 엄마 강순옥이 재벌가 며느리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면서 벌어들인 재산을 투자 실패로 날려 먹은 둘째 딸 김현숙이 인생을 비관하며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무덤을 찾아갔다가 혼절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된 장모란과의 인연으로 내색하지 않았던 그녀들의 상처가 드러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상처 치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가 큰 강순옥은 겉으로는 남편의 외도쯤이야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라면서 위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준비하던 장모란을 집으로 데려와 보살필 정도로 대범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남편이 장모란에게 선물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꿔치기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은근슬쩍 장모란을 타박할 정도로 상처가 깊다. 한때 연적이었을 강순옥과 장모란이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자매애가 싹트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김현숙은 장모란의 지지와 격려에 힘입어 자신을 퇴학시켰던 담임 나말년(서이숙) 선생님을 상대로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던 여고시절 도난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로 나서면서 삶의 자신감을 회복한다.

방송사 앵커우먼으로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표상이 된 언니 김현정(도지원)에 대한 열등감과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부당하게 퇴학까지 당한 절망감이 겹쳐져 인생의 낙오자로 살던 김현숙이 나말년 선생님을 상대로 반격에 나서면서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강순옥과 김현숙 모녀가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언저리를 맴돌았던 것과 달리 강순옥의 손녀이자 김현숙의 딸 정마리(이하나)는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치유하면서 좋은 선생으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인문대 교양 강의를 담당하던 그녀는 방송사의 잘못된 취재와 보도 때문에 먹을거리로 수강생을 유인하는 강사로 오인 받고 졸지에 백수가 된다. 한 번의 어긋남도 없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모르고 살았던 그녀가 상처를 통해 자기 존재를 고민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은 상처가 인생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애써 상처를 외면하고, 그래서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아온 여자들이 ‘착한여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상처를 직시하고 치유를 시작했다. 여성 특유의 연대의식과 유대감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면서 그녀들의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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