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카페 프로코프와 함께 유럽 최초의 문학 카페였던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의 19세기 당시 모습. 루소,괴테, 스탕달도 플로리안의 단골들이었다.  한길사 제공
프랑스 카페 프로코프와 함께 유럽 최초의 문학 카페였던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의 19세기 당시 모습. 루소,괴테, 스탕달도 플로리안의 단골들이었다. 한길사 제공
담론의 탄생 / 이광주 지음 / 한길사

여기 지금의 팍팍한 현실 속에서 ‘유럽의 살롱과 클럽과 카페’라니 한가한 주제가 아닐까 싶지만, “절제를 잃은 표현이 판을 치며 대화와 담론을 거부하는 사회, 시대착오적 국가주의자들이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압박하고 이데올로기적 슬로건이 그림자를 드리운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는 대목에서 저자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가 왜 이런 주제에 꾸준히 천착해왔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담론하고 사귀기 위해 모이는 곳을 뜻하게 된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 공개 토론 문화가 열린 ‘12세기 르네상스’ 시기, 15세기 코시모 데 메디치가 차려 학문적 살롱 역할을 한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 17세기 프랑스 상류 사교계에서 시작된 문예 살롱, 계몽주의 철학 담론이 꽃핀 18세기 프랑스의 철학 살롱과 혁명가들의 사랑방 카페 프로코프, 영국의 커피하우스와 정치 및 문학 클럽, 괴테, 헤르더, 실러 등이 참여한 독일 바이마르의 살롱,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의 문예 살롱과 카페…….

저자는 유럽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정치를 이끈 살롱과 클럽과 카페를 사상사와 문화사의 맥락에서 에세이풍으로 소묘한다. 왜 담론인가?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담론의 세계야말로 사회적 비전을 만들고 나누는 공론(公論)의 형성을 이끌었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하버마스는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형성된 커피하우스와 살롱 등을 공론장의 사례로 들면서 그 공통된 특징을 동등성, 문제제기, 포괄성으로 요약했다.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문예와 정치 이슈를 토론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소통이 일어났다는 것.

“우리는 자유로운 사상을 공공연히 글로 쓸 수 없었지만 카페에서는 자유가 속삭이고 혁명과 농담을 즐겼다. 카페는 이야기하는 신문이며 모반자들의 소굴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싸울 수 있었으며 구제도를 암호로써 타도할 수 있었다. 카페는 혁명의 대학이었다.”

독일 출신 비평가로 파리에 머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와 살롱에서 지낸 그림 남작의 말이다. ‘혁명의 대학’ 구실을 한 대표적인 파리의 카페는 프로코프였다. 그곳에서 에베르, 당통, 마라, 데물랭, 로베스피에르, 미라보 등이 밤이 되면 모여앉아 정보를 나누고 작전을 모의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 자코뱅 당원들이 자유의 상징으로 썼던 붉은 모자도 프로코프에서 처음 선보였다. 노예해방을 위한 ‘흑인 벗들의 모임’ 유럽 본부도 프로코프에 설치되었다.

17세기 말 인구 60만의 런던에는 2000여 곳 이상의 커피하우스가 성업 중이어서 시민들은 초면 인사로 “당신의 단골 커피하우스는 어디입니까?”를 묻곤 했다. 교수, 학생, 언론인, 법조인, 기업가, 연극인, 문인, 일반 시민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여들었고 유럽 최초의 근대적 일간지 ‘스펙테이터’도 커피하우스에서 발족되었다. 커피하우스는 “담론과 계급의식에 관한 여론이 형성되는 길을 터주었고 새로운 휴머니즘의 확대를 위해 우애를 매개하는 장소가 되었다.”

소략하지만 선비 사대부의 사랑방 문화를 다룬 부분이 있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조선 사대부들의 사랑(舍廊)이 세계문화사에 자랑할 만한 교양 문화였지만 “방 주인을 따라 문벌과 학통, 정파를 함께 하며 비슷한 신분에 비슷한 생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한 사람들의 모임을 면할 수 없었다”는 점, “유럽과 달리 여인 부재의 공간이었다”는 점이 참으로 아쉽다고 지적한다. 이 아쉬움은 조선의 여성 문인 “허난설헌이 18세기 프랑스로 옮겨가 살롱을 차린다면”이라는 상상으로 이어진다.

책을 읽고 나면 우리 사회의 담론 문화와 공론장의 수준을 되묻게 된다. 우리는 ‘감히 스스로 생각하는(Sapere Aude)’ 계몽적 시민인가?

표정훈 <출판평론가·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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