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일본 홋카이도 도마무 리조트 골프장에서 부친(왼쪽), 아들(가운데)과 함께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한 양태규(오른쪽) 원장. 양태규 원장 제공
지난해 8월 일본 홋카이도 도마무 리조트 골프장에서 부친(왼쪽), 아들(가운데)과 함께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한 양태규(오른쪽) 원장. 양태규 원장 제공
사고로 아내 잃은 무력감에 1년간 골프 접어양태규 두기한의원 원장

“부친이 워낙 골프를 좋아하셔서 저는 자연스레 골프에 관심을 두게 됐죠. 이제는 초등학생 아들까지 삼부자가 골프를 즐깁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두기한의원의 양태규(44) 원장은 어려서부터 골프채를 갖고 놀았다. 부친 양진모(83) 씨가 ‘골프 마니아’였기 때문. 옛 국제상사 영업부 이사 출신인 부친은 당시에만 해도 생소했던 골프에 일찌감치 눈을 떠 1주일에 2차례씩은 필드에 나갔다. 양 원장에게 골프란 축구나 야구보다도 ‘친숙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정작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건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나서부터다. 2003년 경기 포천중문의대병원에서 근무할 때 선배들의 권유로 레슨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 이후로 테니스를 했고, 각종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아 6개월 연습을 한 후에 자신 있게 라운드를 했다. 첫 플레이치곤 나쁘지 않은 98타를 적어내며 “골프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하면 80대 안쪽으로 진입하는 건 ‘식은 죽 먹기’ 같았다.

그러나 2004년 겨울 두기한의원을 개원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골프를 중단했다. 일요일까지 진료를 하니 도저히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골프모임에서도 빠지게 되고 2005년에 아들 서진(10)을 얻으면서 진료 업무와 육아에만 파묻혔다. 다시 골프채를 잡은 건 2007년이다. 한의사 골프 모임에 들면서 주중에 번개로 플레이를 했다. 3년 안 하는 사이 실력은 형편없이 무뎌져 있었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북악골프연습장에서 다시 레슨을 받았다. 그러고는 애꿎은 장비 탓을 하면서 드라이버를 바꾸고, 샤프트를 교체했다. “골프 초보들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인 ‘장비 교체’에만 열을 올렸던 것 같다. 바꾼 드라이버만 5∼6개는 됐다. 그때야 골프가 어렵게 느껴지더라.”

골프가 힘들어질 무렵 돌연 양 원장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 찾아왔다. 2013년에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골프는커녕 병원 일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어린 아들과 함께 한동안 슬픔을 억눌러야 했다. “골프를 두 번째로 접은 게 그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13년부터 한 1년은 쉬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대로 슬픔에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양 원장에겐 아직 어린 아들과 연로한 부모가 있었다. “상처하고 1년쯤 지나서 부산에 계시던 아버지, 어머니를 서울로 불러 합가를 했다. 그리고 뭔가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걸 찾다가 골프를 생각해냈다. 상경해서 심심해하시는 아버지께 골프 얘기를 꺼내자, ‘칠 수 있다’며 반기셨다. 이거다 싶어서 가족끼리 나가봤다.”

지난해 5월에 처음으로 가족 동반 라운드를 나갔다. 경기 포천 일동 레이크 골프장이었다. 양 원장과 부친, 큰누나가 함께했다. 나인 홀만 돌았지만 그동안의 우울한 기운을 떨쳐버리기엔 그만이었다. “아버지는 모처럼 골프채를 잡아 기쁘셨는지 그 연세에도 200m 가까이 드라이버 샷을 날리셨다. 남들은 웨지를 쓸 포인트에서는 굳이 8번 아이언을 고집하며 즐거운 라운드를 했다.”

가족 라운드로 힘을 얻은 양 원장은 지난 여름에는 서진이와도 동반 플레이를 했다. 캐디가 없는 정통 미국식 퍼블릭인 경기 포천 락가든 골프장에서 함께 캐디백을 끌고 스윙을 하며 땀을 냈다. “역시 나인 홀만 했는데 아들이 곧잘 치더라. 그래서 다음 여행을 계획했다.”

다시 그해 8월 양 원장 가족은 일본 홋카이도로 3주간의 가족여행을 갔다. 도마무 리조트에 머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때 처음으로 삼부자가 18홀을 함께 돌았다. 여름이지만 홋카이도는 서울보다는 덜 더워서 해볼 만했다. 일본에는 가족 골프 문화가 익숙해 보이더라.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쳤다. 나는 88타, 부친은 90대 초반, 아들은 100개 이상의 전형적인 초보자 스코어를 냈지만 오래간만에 가족 모두가 웃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양 원장은 골프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싱글 골퍼들이 즐비한 ‘예스 골프’에서 한 달에 2차례 목요일마다 필드에 나간다. 첫째 주는 투어 라운드여서 여러 곳을 누비고, 셋째 주는 동호회만의 모임이어서 경기 남양주 양주컨트리골프장에서 친목을 도모한다. “한 선배의 권유로 우연히 모임에 가입하게 됐는데 한의사가 아닌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있어서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만약 한의원에서 진료만 하고 있었다면 전혀 알 수 없었던 것들이다. 골프가 주는 장점이기도 하다.”

양 원장은 그럭저럭 구력이 10년이 넘었지만, 도중에 2번 중단했던 경험 때문에 최저타 기록은 83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점차 욕심이 커지고 있다. “70대 타수로 빨리 들어가야겠고, 기회가 된다면 장타자 경기에도 나가보고 싶다. ‘예스 골프’ 모임에서는 늘 세컨드 샷을 맨 처음 하는 ‘수모’를 겪고 있지만 맨 마지막에 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꿈을 꾼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골프는 내게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줬다는 점이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 양태규에게 골프란 = 끝까지 경기를 해봐야 아는 것, 18홀을 다 돌아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인생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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