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총체적 위기다. 국무총리를 포함한 여권 핵심 인사 8명의 금품 수수를 밝힌 ‘성완종 리스트’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괴물로 변한 ‘성완종 파문’에서 벗어나야 정치도 살고 민생도 산다.
우선, 검찰이 청와대나 권력 실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 수사를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국민도 그런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발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임자 처벌만이 아니라,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최소한의 상징적인 조치로, 박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에 대해 조속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만큼 이 총리의 자진 사퇴가 옳다는 주장까지도 나온다. 그는 그동안 부적절한 처신과 발언, 잦은 말 바꾸기 등으로 이미 국민의 신뢰와 권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비리 사건과 대선 자금 문제는 분리돼야 한다. 박정부는 다른 정권과 달리 돈 문제에서만큼은 깨끗하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친박(親朴) 실세들과 관련된 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현 정부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성완종 리스트’가 2012년 대선 자금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기미를 보이자 “대선 자금에는 여야가 있으며, 야당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야당은 “검찰 수사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고 근신(謹愼)하는 것이 ‘부패의 몸통’인 새누리당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라고 정면으로 공격했다.
또 하나, 여당은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성 회장은 노무현정부 당시 두 번의 특별사면을 받았다. 여당은 사면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다. 여당의 이런 ‘물귀신 작전’은 오히려 여론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야당도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전형적인 물타기라고 반발한다.
이유야 어떻든 성완종 파문이 모든 중요 현안을 집어삼켜 국정 운영이 작동 불능 상태로 빠져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가 적시에 처리해야 할 많은 일이 표류되고 지체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봄이 꽃과 함께 오는 것처럼 감동은 결단과 함께 온다. 박 대통령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결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 9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잘못에 대해 강도 높게 사과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관해 “2개의 판결이 있다”고 발언했다가 논란이 일자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분명, 박 대통령은 결단해야 할 때 절묘한 시점에 국민의 편에 서서 결단을 내렸다. 지금이 바로 대통령의 이런 결단이 필요한 때다.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이 있어야 국회와 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改革)을 위한 합의를 도출하고, 노·사·정 대타협의 길을 열며, 경제를 활성화시킬 해법을 찾고, 미래를 향한 정치 개혁도 할 수가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도덕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세울 수 있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