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 논설위원

냉전 시기 ‘제3세계’ 비동맹의 동맹을 추구했던 반둥회의가 열린 지 60년이 됐다. 1955년 4월 18∼24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 신생 독립국 대표들이 인도네시아의 반둥에 모였다.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한 동서냉전이 심해지는 가운데, 서구 자본주의 진영인 제1세계에도, 동구 사회주의 진영인 제2세계에도 포함되는 않는 독자적 제3세계 진영을 만들자는 주장은 당시 아시아·아프리카의 수많은 지식인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반둥회의는 표면상 비동맹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반(反)서구 친(親)사회주의였다.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돼 있는 한 제국주의로부터의 구조적 착취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민족해방운동’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단절해야 한다고 믿었다. 소련이 제기한 ‘비(非)자본주의적 발전의 길’론과도 접목됐다.

그리고 반둥 노선의 실상은 모든 문제를 제국주의 탓으로 환원시켜 버린 단순하고 속 편한 자기 합리적 사고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대중의 열정과 환호성을 끌어내기는 쉬운 구호였다. 반둥회의의 영향은 우리에게도 막대했다. 1980년대 ‘제3세계적 사고’가 대학가의 주류 담론이었다.

그러나 반둥회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도, 이집트의 나세르도, 북한의 김일성도 자신의 조국을 도탄에 빠뜨렸을 뿐이다. 번영을 누린 것은 대한민국처럼 반둥회의와 반대의 길을 선택한 경우다. 반둥회의 중심이었던 중국과 인도가 경제 발전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도 반둥 노선을 버리면서부터였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현실의 대한민국’이 제3세계로부터 벗어나면서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인지 부조화’의 고통을 맛보기도 했다.

반둥회의 60주년 행사가 인도네시아에서 대대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독립·자주·비동맹 등의 반둥회의 정신을 기린다고 하나, 현실적 관심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돈 보따리 약속에 집중돼 있다. 비동맹을 버리고 새로운 패권을 추구하든, 과거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일으켰든 상관없다는 분위기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이런 유행과 다른 길을 택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선지자적 고독 덕분이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요즘처럼 정치 리더십이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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