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원, 안의·손홍록 시민강좌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6월 전라감영은 일본군 6진이 전라도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해 4월 일본군이 조선 땅에 발을 붙인 뒤 파죽지세로 서울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전라도는 전쟁과 무관한 지역이었는데 전라도 역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에는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관한 외사고가 있었다. 내사고인 춘추관사고, 나머지 외사고인 충주사고·성주사고 등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은 전란 과정에서 모두 불타 없어져 전주사고까지 피해를 입으면 조선왕조실록은 명맥이 끊기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때 태인(현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 살고 있던 유생 안의와 손홍록은 분연히 일어났다. 조선왕조실록의 소실을 우려해 가동(家동) 30여 명을 인솔해 조선왕조실록, 태조 영정 등을 내장산으로 급히 옮겼다. 이들이 옮긴 서책 물량은 조선왕조의 역대 실록 30여 궤짝, 고려사 등 각종 중요 서적 20여 궤짝 등이다. 권수로 따지면 1368권(조선왕조실록 830권, 고려사 등 기타 538권)이었다. 안의와 손홍록의 고초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임계기사’(사진)에 수록된 수직상체일기는 이들이 실록을 지키면서 기록한 일종의 당직 근무일지다. 안의와 손홍록은 53일 동안 함께 조선왕조실록을 지켰고 이와는 별도로 각각 174일, 143일 수직(守直)했다. 총 370일간의 수직이었다. 또 손홍록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조선왕조실록을 묘향산 보현사로 옮기는 일도 했다. 이 덕분에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만 남게 돼 후에 재간행될 수 있었다. 만일 사재를 들이고 자신들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한 이들이 없었다면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151호이자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오는 21일부터 5월 18일까지 대전시민대학에서 안의와 손홍록이 남긴 임계기사 수직상체일기 등을 주로 한 시민강좌를 실시할 예정이다.

유회경 기자 yoolog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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