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 서울대 교수 정치커뮤니케이션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근본 원인은 국회로의 권력 집중이다.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면서 대통령의 권력은 과거보다 대폭 축소됐다. 반면, 국회의원들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부여받았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해 주지 않아 정책 추진이 좌절될까 눈치를 살핀다. 국무총리·장관 등은 물론 사법부의 대법관 후보도 인사 청문회에 불려가 호통을 듣고 인격적 모욕을 당하기 일쑤다. 공무원들은 국감에 불려 나가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전전긍긍한다.언론도 ‘김영란법’이란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받았다. 기업인은 말할 것도 없다. 성 전 회장이 국회의원들과의 인맥 쌓기에 집착한 것을 비난만 할 수 없는 이유다.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든 국회의원들의 눈 밖에 나선 안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도 당·청 관계를 고려해 현직 국회의원들을 중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달이 났다. 한국 정치 환경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돈을 준 기업인과 돈을 받은 다른 국회의원들을 사정(司正)할 자격이 있을까?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완구야말로 사정 대상 1호”라고 비꼬았다. 이 총리가 특별한 국회의원은 아닐 것이다. 이미 검찰의 수사 대상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이 총리는 기업인과 공무원들을 희생양 삼아 국정 분위기를 쇄신해 보려다 현 사태를 자초했다. 국회의원이어서 윽박지르기식 권력 남용에 무감각해진 탓은 아닐까? 총리가 국회의원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논란이 될 사안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2014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정치인에 대한 공공의 신뢰’면에서 평가 대상 144개국 중 97위로 우간다(94위)보다도 낮았다. 그나마도 2013년에 비해 15단계 상승한 순위다. 반면 ‘기업 혁신’은 17위로 상위권이다. 누가 누구를 사정한다는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이 권력을 가지는 이유는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완종 파문으로 유권자들의 국회의원들에 대한 마지막 남은 신뢰마저 사라지고 있다. 이미 유권자들은 ‘차떼기’, ‘박연차 게이트’ 등 유사한 사건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바 있다. 특정 정부나 정당의 문제가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국회 권력의 근간이 사라지게 될 위기인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회의원들은 생존을 위해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변화의 핵심은 권력 휘두르기에는 신중하고 기본 임무에 충실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적체된 민생 법안을 처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사는 검찰에서 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선 수사 대상’이나 ‘물타기’ 운운하는 것은 세계 97위 국회의원들의 또 다른 권력 남용 사례가 될 뿐이다. 유권자들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 여·야의 유불리를 따지는 정쟁에 이용되기를 원치 않는다.

4월 국회에는 중요한 민생 현안이 적체돼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각종 경제 활성화법과 전·월세 대책, 세월호 참사 후속 조치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 경과 보고서 등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깊이 있는 논의 과정 없이 졸속 처리될 위기다. 대정부 질문도 이 총리가 표적이 되면서 정책 질의가 실종됐다. 여·야는 4월 임시국회가 갖는 중요성과 유권자들의 분노를 직시해 본연의 업무에 복귀할 때다. 그것만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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