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 대니얼 데닛 지음, 노승영 옮김 / 동아시아

“인지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대니얼 데닛을 아는가?” 어쩌면 이건 답을 바라는 질문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교양인이라면 당연히 그를 알아야 한다는 강요에 가깝다. 대니얼 데닛은 이를 ‘수사 의문문’을 이용해 실제로는 모두가 동의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확신을 강제하려는 ‘생각도구’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니 이 질문 자체에 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건 사실이다.

모두가 대니얼 데닛이라는 학자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고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가 오늘날 뇌 과학 열풍의 철학적 근원을 제공한 세계적 석학이라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의 대가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마빈 민스키 교수는 ‘지구를 대표해 외계인과 지적 대결을 펼칠 사상가를 선발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데닛이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 국내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그를 자신의 ‘지적인 영웅’이라고 손꼽았지만 데닛의 대표작인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는 ‘이기적 유전자’의 대중적 인기에 한참 뒤떨어진다. 데닛의 신작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는 그런 점에서 반가운 책이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데닛의 책 중에서 가장 공들여 번역했고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

지금껏 그의 책이 독자에게 어려웠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도킨스나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과학자들이 발군의 글 솜씨로 독자를 끌어들인 반면 그는 철학자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난해한 스타일과 화려한 논증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스타일이어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이 책에 추천사를 쓴 장대익 교수의 의견처럼 ‘그의 생각도구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니얼 데닛의 77가지 생각도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의 첫 번째 목표는 데닛처럼 생각하기다. 데닛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대체 그는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는지를 살펴보자는 발상의 전환이다. 물론 주의할 점은 있다. 이 책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공부나 지식을 요점 정리한 책이라고 오해하지 말길. 이 책은 어디까지나 그가 지금까지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들, 지향성·지능·자유의지·종교·의식 등에 관한 생각을 총정리한 것이다. 그는 생각도구를 단순히 설명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진화생물학에 기반을 둔 인지과학자로서 그가 도구를 사용해 생각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책의 궁극적 목표는 데닛의 도구를 따라 데닛의 생각하기 방식에 이끌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데닛에게 설득당하는 것이다.

책의 제목인 ‘직관펌프’도 데닛의 생각하기 도구 중 하나다. 유물론자인 데닛이 이런 비유를 언짢아할지 모르지만 성경이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늑대와 양치기 소년’ ‘개미와 베짱이’ 같은 우화들이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직관을 펌프질하려고 만든 생각도구다. 줄거리는 자세히 생각나지 않아도 이야기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바로 생각나도록 이끄는 게 직관펌프의 역할이다. 데닛의 생각도구는 이런 직관펌프다.

1부에 소개된 12개의 일반적 생각도구는 누구나 읽어도 흥미로운 도구들이다. 저자가 제일 먼저 꺼내든 생각도구는 예상치 않게 ‘실수하기’다. 철학자는 실수 전문가라 할 만한 이들이며 실수를 저질러야 무엇을 고쳐야 할지 뚜렷하게 알 수 있단다. 자기계발서에서 많이 본 듯한 이 메시지는 데닛의 현란한 수사학을 만나 바로 진화생물학의 주제들로 넘어간다.

생물학적 진화 역시 시행착오라는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으며, 만약 착오가 없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실수를 기준으로 삼아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연습을 하듯, 자연 선택은 지금까지 효과가 있었던 것은 무조건 보존하며 크고 작은 혁신을 대담하게 탐구하는 과정을 반복해 지금에 이르렀다.

또 상대 연구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만큼 도발적인 설전도 마다하지 않는 데닛의 면모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대 진화론에서 도킨스와 반대편에 있던 굴드의 생각도구를 여지없이 비꼰다.

진화의 패턴이 불연속적이라고 주장했다가 도킨스와 데닛 등에게 집중공격을 당했던 굴드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할 때 ‘그게 아니라’라는 수사학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꼼수를 부렸다고 한다.

저자는 이어 진화, 의식, 자유의지를 위한 생각도구를 차례로 풀어낸다. 우리는 의식은 자기 자신만의 생생하며 내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의식이란 단편적 연상 작용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단지 ‘뇌 속의 병렬처리 과정에서 매 순간 편집되는 수많은 단편적 연상들의 치열한 경쟁에서 결국 하나의 생생한 스토리가 살아남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다. 즉 의식이란 ‘뇌의 신경세포가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과정’ 이상이 아니며 놀랍게도 의식 역시 진화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자연선택이 이뤄낸 최후의 승리이다.

감히 인간에게 의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논쟁과 반박을 불러올 주장을 하는 사람, 그가 바로 데닛이다. 그가 가능하지 않을 듯한 새로운 상상을 하고, 낯선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생각도구를 챙겼기 때문이다. 데닛의 생각도구를 챙긴다면 독자 역시 물질적 세계에서 의미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생명이 어떻게 생기고 진화했는지,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유의지가 우리의 타고난 재능인지 아닌지를 온전히 상상해볼 수 있다.

진화생물학을 기반으로 해 철학과 인지과학을 넘나드는 독창적 사상가 데닛은 이렇게 독자를 지적으로 도발한다. 저자의 책 중에서는 가장 대중적이지만, 그의 표현을 빌리면 ‘똑똑한 학부생들이 모르는 걸 질문해 가며 이해할 만한 수준’의 대중서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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