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 / 피터 스와이저 지음, 이숙현 옮김 / 글항아리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 가지야. 첫째는 돈이고, 둘째는 뭐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윌리엄 매킨리(재임기간 1897∼1901) 25대 미국 대통령의 모금 담당자 마크 해나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돈, 돈, 그저 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해나는 당시 규모가 큰 기업에 노골적인 경고를 날리며 일종의 청구서를 보냈다. 기업의 문제를 지목한 것이지만 사실은 상응하는 돈을 내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매킨리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할 당시 백악관은 이런 식으로 기업인들을 흔들어 250만 달러(2012년 기준 6700만여 달러)를 받아냈다.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미국의 보수적 성향의 ‘정부책임연구소’ 소장이자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 연구원인 저자는 20세기에 들어 이 같은 정치권의 ‘갈취’가 워싱턴에 광범위하게 퍼졌고 수법은 완벽하게 정비됐다고 말한다. 기부, 후원, 로비 등 합법적 이름으로 불리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정치권의 적극적인 갈취라는 것이다. 책은 미국 정치에서 이 같은 ‘갈취’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폭로하고, 그 메커니즘을 신랄하게 폭로하는데, 불법자금과 뇌물 문제가 끊이지 않는 한국 정치에도 상당한 시사점을 던진다.

책의 가장 흥미로운 것은 도발적인 시점 뒤집기이다. “사람들은 흔히 돈이 정치를 부패시킨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노동단체부터 대기업까지 이해 관계자들이 우호적인 정책을 위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이들은 유리한 정책을 위해 돈과 특혜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중략) 그런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면? 이해관계자들이 건네는 뇌물이 사실상 정치인들에 의한 갈취라면? 이들은 돈과 특혜를 받기만 하는 소극적 수취인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갈취하는 상황을 만든다. 자신과 정치적 동지들을 위해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돈나무를 흔들어댄다. 애초 가정은 우리가 외부세력으로부터 정치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그 정치인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이에 “현대 미국 정치는 정책으로 무언가를 하기보다 돈과 특혜에 접근할 수 있는 수익 사업이자 산업이 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양당이 정책을 입안하는 동기는 올바른 정책을 만드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고, 법안과 규제는 정책 변화가 아니라 돈과 특혜를 갈취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가령 미 하원은 1981년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기업을 위해 특별 세액 공제조항을 신설했다. 신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에 특별 세금 감면을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조항은 영구적으로 법제화된 적이 없다. 계속 갱신만 된다. 1998년까지만 해도 세액 공제와 관련된 조세 감면 연장안은 42건이었으나 2011년까지 그 수는 154개로 늘어났다. 이유는 뭘까? 저자의 도발적 시점 뒤집기를 들었으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전 최고운영책임자인 허볼드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인들은) 연구 개발 세액 공제에 대해 뻔한 얘기를 늘어놓고는 항상 돈을 요구한다. 그들에겐 이게 일종의 연금이다.”

기업으로서는 당연히 세금을 내는 것보다 조세 감면을 연장해줄 의원을 매수하는 게 훨씬 더 싸기 때문이다. 이 같은 돈을 겨냥한 정치는 보수와 진보, 선출직과 비선출직, 의원과 관료 모두에게 해당된다. 진보적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물론 진정한 정책 입안자나 정치 지도자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고 단서를 단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 정치는 돈으로 움직이는 판으로 세팅됐다며 워싱턴 정치를 프로레슬링, 정치인들을 프로레슬러에 비유한다. “순진한 눈에는 아주 지독한 혈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교하게 짠 연기일 뿐이다. 프로레슬러들은 링 위에서 서로에게 손가락질하고 소리 지르고 서로를 증오하는 것처럼 연기하며 결투를 벌인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관중을 즐겁게 해주고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한 사업 동료들이다. 경기에서 누가 이기든 모두 돈을 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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