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의 손바닥 / 윤여림 글, 노인경 그림 / 웅진주니어

서유기를 보면 근두운을 타고 신나게 달리던 손오공이 결국 석가여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것이 손바닥 안에 있다’는 말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에 수레바퀴처럼 정해진 한계가 있다는 말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전통적인 ‘손바닥론’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명랑하게 뒤집는다. 숲과 호수, 남극과 우주를 가로지르는 여행이 주인공 은이의 작은 손바닥 안에 있다. 손바닥을 펼치면 은이는 끝없는 상상의 발신자가 된다. 그리고 그 종착점에서 은이를 기다리는 수신자는 다름 아닌 친구의 작은 손바닥이다.

은이는 기린, 악어, 코끼리 인형이 들어 있는 작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손바닥을 펼쳐서 그 안에 아른아른한 햇살을 담고 떠나는 산책길에는 은이의 재미난 상상이 따라간다. 은이네 집 앞 출발지점에 그려진 텅 빈 말풍선은 은이가 상상하는 이야기도 함께 간다는 증거다. 은이 손바닥의 햇살 한 줌은 그림자 숲을 만들고 손바닥에 떨어진 빨간 단풍잎 한 장은 신기한 탈 것이 되어 은이를 푸른 호숫가로 데려간다. 손바닥에 품은 작은 씨앗이, 톡 떨어진 빗방울 하나가, 사락사락 눈송이가 놀라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깃털 돛단배를 타고, 행성들이 운행하는 우주 한복판까지 거침없이 날아간 은이는 결국 그 까맣고 아득한 공간을 유영하면서 어떤 일을 했을까? 기나긴 모험을 마친 은이는 집 근처 편안한 놀이터로 되돌아온다. 은이는 이곳에서 그동안 손바닥 모험의 동반자였던 나뭇잎, 깃털, 사탕, 펭귄 장난감의 호위를 받으며 양팔을 크게 벌리고 친구와 걷기 놀이를 한다. 숨 가쁜 모험의 끝이 친구와 손잡기라는 결말은 참 따뜻하다.

이 책은 시처럼 간결한 문장과 그 문장의 여백을 가득 메우는 풍부한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이 묻고 그림이 대답하는 구조가 되풀이되면서 긴장과 이완의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어린이는 글자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은이의 작은 손바닥에 시선을 집중했다가 그다음 장에서 넓게 펼쳐진 그림을 보며 상상의 호흡을 후우 내뱉는 통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 유아기의 어린이는 자기 자신이 세계를 좌우하는 전능한 신이라고 여길 정도로 세계를 향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원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은 상상력의 원천이 될 뿐 아니라 앞으로 그가 인생에서 마주칠 모험의 기초 동력이 된다. 물방울 하나로 빗줄기를 만들어 수백 마리의 물고기를 갈증에서 구해낸 은이의 만족스러운 미소는 ‘내가 얼마나 멋진데!’라는 아이들의 마음을 정확히 나타냈다. 그림을 잘 살피면서 모험왕 은이의 충실한 수행원들을 꼭 찾아보기 바란다. BIB 황금사과상 수상작가인 노인경은 사랑스러운 장면 구석구석에 이 흥미로운 수수께끼를 숨겨두고 있다.

김지은 <어린이·청소년 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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