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 / 한국문학번역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한국인이 잘 모르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우리가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를 모르고, 둘째는 한반도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모르며, 셋째는 일본과 미국이 우리하고 얼마나 다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인데도 상대적 빈곤의식 속에 행복지수가 늘 하위권을 맴돌고, 안보 불감증에 걸려 한반도의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모르며, 일본과 미국을 우리하고 비슷한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 말고도 우리가 잘 모르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은 많다. 예컨대 우리는 공산주의 국가가 계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엄중한 서열이 있는 철저한 위계 사회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특히, 지도자와 당원과 인민 사이의 신분과 특권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반대로, 우리는 미국은 모든 것이 평등한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미국 사회 역시 엄격한 위계질서와 계급으로 이뤄져 있으며, 신분에 따른 특권과 예우를 인정하고 있다.

그 한 예로, 내가 전에 가르쳤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는 교수 연구실도 직급과 경력에 따라 크기가 달랐고, 주차장의 위치도 달랐다. 반면, 한국의 대학은 원로 교수나 신진 교수의 구분 없이 모든 교수에게 똑같은 크기의 연구실과 주차장을 제공하는데, 우리는 그게 전혀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고, 오히려 바람직한 사회정의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인간의 존엄성과 법 집행에 있어서만큼은 평등해서 시장에게도 불법주차 범칙금 통지서를 발급하고, 국방장관에게도 집 앞의 눈을 안 치운 데 대한 벌금을 부과하며, 국회의원이라 할지라도 법을 어기면 즉시 체포한다. 또한, 미국인들은 법질서 의식과 상하관계가 엄격해서, 정부나 법 집행기관이나 상급자의 권한에 쉽게 승복한다. 그래서 상급자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승복하지 않는 우리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시위를 하거나 경찰관과 시비를 벌이는 것을 보기 어렵고, 해고당한 근로자가 고용주에게 항의하는 것도 보기 어렵다.

최근 미국에 갔을 때, 어느 슈퍼마켓의 계산대에서 일하는 신입 직원 바로 뒤에 매니저가 서서 오랜 시간 감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국 같았으면 아마도 인권유린이라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텔레비전 인기 프로인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외국인들이 자국의 갑을(甲乙) 간 갈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이 세상 모든 나라에 갑과 을의 관계가 있다고 대답한 것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또 미국을 우리나라처럼 하나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미국은 법과 체제가 각기 다른 50개의 나라로 이뤄진 ‘합중국’이다. 그런 미국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상징은 성조기다. 그러므로 반미 데모를 할 때, 성조기를 훼손하는 것은 전 미국을 적으로 만드는 것인데, 우리는 그걸 잘 모르고 있다. 미국은 또한 개인주의를 존중하지만, 팀워크도 중시하고 부처 간 협력이 잘되며, 우리 생각과는 달리 대단히 가정적인 나라다.

한국인이 잘 모르는 것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평등한가 하는 것이다.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으면서 갑질만 하는 못된 특권층도 있지만, 동시에 한국처럼 평등주의가 철저한 나라도 드물기 때문이다. 경제적 형평성은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우리는 더는 갑의 횡포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또 외국인이나 해외 교포는 한국이 아직도 가부장적 유교 사회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대다수 한국인은 유교 서적을 읽은 적도 없고, 윗사람에 대한 공경심이나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도 우리 사회에서 급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가 해외에서 뭔가를 받아들일 때, 오해한 것도 많다. 예컨대, 20세기 초에는 모더니즘을 퇴폐 사조로 오해했고, 20세기 후반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단순히 예술의 상업화와 표절을 허용하는 사조로 착각했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는 것인데, 우리는 다수결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해 전체주의를 허용했고, 책임이 따르는 자유를 뭐든지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으로 곡해했으며, 평등은 인간 존엄성의 평등이 아닌, 계급과 재산의 평등으로 오해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는 물질주의로, 사회주의는 무상복지로 오해했으며, 공산주의는 단순히 가진 자의 재산을 빼앗아 나눠주는 것으로 오해했다.

우리는 독재정권에 대항한 운동권 투사들은 무조건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기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이 너를 들여다본다”고 경고했다. 과연 과거 민주화 투사들 중에는 독재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독재자의 횡포와 독선을 닮아간 사람도 많았다.

우리는 국가가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사전에 국민과 논의하고 국민의 허락을 받으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나라 살림과 외교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의 책무이며,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국가안보 사안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좋은 정치인을 뽑아야만 한다. 만일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뽑았다면 그 결과는 표를 던진 국민이 감내(堪耐)해야 한다.

오해는 대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다른 문화를 잘 알고 오해를 불식(拂拭)할 때, 우리는 국제사회의 파트너로 환영받는 세계의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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