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창대회 출전 긴장 지나쳐 100打 넘기고 탈락권영기 ㈜더채움 대표

권영기(59·사진) ㈜더채움 대표가 골프를 치면서 가장 먼저 받은 ‘훈장’이 홀인원이다. 이글이나 싱글패보다 홀인원 트로피를 먼저 받았다.

2000년 가을부터 골프를 시작한 그는 3년도 채 안 된 2003년 4월 홀인원의 행운을 안았다. 충남 천안의 상록골프장 중코스 4번 홀(파3)에서 지인들과 라운드 중 155m 거리에서 6번 아이언으로 친 샷이 그대로 홀로 들어갔다. 당시 그는 80대 스코어를 가끔 칠 때였다. 홀인원 이후 그의 골프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해 가을 경기 가평의 썬힐골프장에서 79타를 쳐 첫 싱글패를 받았고, 이듬해엔 지금은 위례신도시 개발로 사라진 미군 소유의 성남골프장에서 첫 이글을 뽑아냈다. 지금까지 그의 베스트 스코어는 73타다. 경기 광릉골프장에서 버디를 5개나 뽑아냈고, 보기 4개를 기록했다. 10m가 넘는 퍼팅이 세 개나 들어갔고, 그린 주변에서 칩 샷도 두 개나 들어갔다.

식품회사 영업담당 임원 시절 외환위기가 닥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표를 던졌다. 막막했지만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시장의 3평짜리 점포에서 견과류 도매업을 하면서 연간 15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공했다.

거래처가 없던 그는 ‘밑지는 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100원을 주고 산 물건을 80∼90원에 팔았다. 그랬더니 서로 물건을 사겠다며 그에게 달려왔고, 점차 영향력 있는 업체로 성장했다. 이후 술자리가 많아지고 퇴근도 늘 늦어 번번이 거절해 왔던 골프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골프를 하면서 삶의 패턴이 달라졌다. 사실 그는 골프를 시작하기 전까지 자신에게 투자한 게 하나도 없었다. 골프는 스스로를 위한 유일한 투자였다. 뒤늦게 시작한 골프가 낙이 됐다. 골프를 시작하면서 재미를 느꼈고, 스스로 빨려 들어갔다. 연습장에 열심히 다녔던 게 지금까지 80대 초중반 스코어를 유지는 비결. 지금도 드라이버 거리 230m를 보낸다는 그는 장타 덕에 이글도 8차례나 작성했다.

그는 술안주에 그쳤던 견과류를 지금의 국민 간식류로 만든 ‘선구자’였다. 견과류 전문 제조 판매사를 만든 그는 튀기던 견과류를 저온으로 가열해 볶는 방식으로 전환시켰고, 세계 최초로 견과류 1일치 팩을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남겼다.

학계의 조언과 각종 문헌을 뒤지면서 하루 25g이 권장량이라는 결론을 얻었던 것. 지금은 세계적인 브랜드 선키스트, 세계 최대의 견과류 업체인 파라마운트 팜스, 국내 유명 제과업체 등 ‘빅 바이어’와 주로 거래하고 있다. 어린이 간식에서부터 청장년용, 중장년층 등 세대별로 필요한 견과류를 달리 포장해 판매하고 있다. 그는 “견과류는 포장지를 개봉하는 순간부터 습도로 인해 각종 미생물이 자라기 때문에 오래 두고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니 적은 양으로 나누어 보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견과류 사업에 골프는 많은 도움이 됐다. 골프 모임도 적극 활용했다. 함께 골프를 즐기면서 자신의 제품을 지인들에게 돌려 반응을 확인했다. 거래처를 관리하는 데도 골프가 최고였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6개 골프 동호회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즉석에서 견과류를 볶아주는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진출했다.

부산 출신인 그는 한 골프 전문 케이블채널에서 진행하는 고교동창 골프대회에 출전했다가 카메라 앞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100타를 넘겨 예선 탈락한 경험도 있다. 70대 스코어를 칠 무렵이었지만 벙커에 볼이 빠지기라도 하면 상대편 선수와 마커가 가까이서 지켜보는 걸 의식한 탓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것. 그냥 잘 쳐서만 안 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때처럼 압박감을 받은 적도 없다고 털어놨다.

“주어진 위치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골프가 추구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그는 평소 스트로크 게임을 선호한다. 그래야만 기량 향상을 꾀할 수 있고 건성건성 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고받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번은 ‘내기꾼’들에게 휘말려 낭패를 당할 뻔했다. 연습장에서 안면을 익혔던 사람들과 함께 라운드를 나갔다가 상대의 치졸한 행동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가 티 샷을 러프로 보내자 그들이 볼을 찾아주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멀쩡한 볼이 사라졌다. 일행 중 한 명이 그의 볼을 밟고 지나간 것. 간신히 박힌 볼을 찾은 그는 “이런 분위기로는 함께 칠 수 없다”며 내기 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말로만 들었던 것을 실제로 경험한 황당한 사건이었다고 기억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끝>

▶ 권영기에게 골프란 = 샷을 한 뒤에는 늘 후회가 남고, 샷 결정은 늘 아쉬움과 미련의 연속이다. 다음엔 잘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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