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사라졌다. ‘성완종 게이트’로 나라가 시끄럽고 정국이 출렁이는데 정작 대한민국 국회는 존재감이 없다. 자취를 감춘 듯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대통령과 정당 실세들의 말 몇 마디, 검찰의 동향 및 언론과 여론의 흐름에만 촉각을 곤두세울 뿐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은 아예 실종돼 버린 느낌이다. 1년짜리 국회의원 4명 뽑는 재·보선에 여야 정치권이 사활을 걸었으니 관심 없는 국민은 짜증만 늘어난다.
세월호 인양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 22일, 이 중요한 현안을 국회도 거치지 않은 채 ‘선체 인양’으로 최종 결정했다. 다각적인 검토와 진지한 논의는 부족했고 여론 수렴 과정은 생략됐다. 국민 세금이 투입될 천문학적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따져봐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지난번 수색 과정에서도 미숙함과 불협화음, 더구나 불의의 사고까지 나지 않았는가. 선체 인양은 그보다 훨씬 더 고난도 작업일 텐데 무엇에 쫓기듯 너무 서두르고 있다. 설마 하는 방심과 기본을 무시한 안전 불감증이 세월호 참사를 낳았다고 그렇게나 자탄했으면서 국회는 왜 침묵하는 걸까.
언제부턴가 우리 국회는 ‘욕먹는 하마’가 돼버렸다. ‘김영란법’을 예로 들어보자. 1년 반을 끌어오다 진통 끝에 여야가 합의 처리했는데도 국민 여론은 싸늘하고 언론은 자꾸만 딴죽을 건다. 모처럼 만의 합의 통과로 칭찬을 기대했을 당 지도부는 당혹스러웠으리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국회선진화법’에 매여 일을 안 한다고 욕을 먹던 국회다. 그러나 그 덕분에 예산안은 해를 넘기지 않고 처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국회 잘했다는 얘기보다는 오히려 예산안 부실 심사니 지역구 예산 끼워 넣기니 하는 비판이 더 많았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국회요 정치권이다. 이런 현상은 왜 빚어질까.
현역 의원 시절, 편한 자리에서 지역구 얘기를 하다가 “매주 한 번 이상 왕복한 서울∼부산 비행기 요금만도 아내 것까지 10년 치를 합하면 작은 아파트 한 채는 샀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는데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비행기를 공짜로 타는 것 아니냐”는 거였다. ‘그게 다 우리가 낸 세금이야’ 하는 속말이 표정에서 읽혔다. 무척 당황했고 서운했다. 1992년 여의도에 들어온 이래로 공무원 10% 할인 혜택은 받아 봤지만 비행기를 공짜로 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왜 국민은 그런 오해를 하는 걸까. 국회의원 하면 국민은 ‘특권, 부패, 무책임’ 같은 낱말을 떠올린다. 국회는 ‘일은 않고 호통이나 치면서 행정부 발목 잡는 기관’으로 비친다. 의원 개개인은 뛰어나고 인격자가 많은데 왜 ‘국회’라는 집단으로 묶이면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걸까. 한마디로 국회가 신뢰를 못 받아서다.
의장 시절 직속 기구였던 자문위원회가 운영 제도 개선안을 만든 게 6년 전이고, 그 뒤 조금씩 개선은 됐지만, 핵심 내용은 아직도 답보상태다. 정의화 의장이 국회 운영 개선안을 재정비해 냈다고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회 개혁이 되기를 다시 기대해 본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상시(常時) 국회’ 제도다. 국회 문은 늘 열려 있어야 한다. 휴회와 정회를 반복하며 공전하는 폐습을 버려야 한다. “국회가 오늘 열릴지 내일 열릴지 국회의장도 모르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자조(自嘲)가 더는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국회 출석은 여야 협상 대상이 아닌 의원의 의무 사항이다. 회의체 기관인 국회가 회의를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겠는가. 회의는 계속돼야 하고 시간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국회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자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날 매듭 못 지은 안건은 다음 날 논의하면 된다. 무분별하고 무제한적인 증인 채택, 공무원이나 기업인들을 불러다 놓고 마냥 시간을 끌며 붙잡아 두는 구태도 벗어 던지자. 이 부끄러운 유산만 청산해도 국회를 보는 국민의 시각은 달라질 것이다. 365일 중 320일 문을 열고 휴일도 반납한 채 밤늦게까지 국정에 매진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을 본받아 제헌의회 정신으로 돌아갈 때 국회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살아날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국회가 사는 길이기도 하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시한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참 많이 기다렸다. 여야가 국민에게 한 약속과 시간이 또 공염불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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