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 논설위원

지난 27일 밤 구르카 용병들이 영국 브라이즈 노턴 공군기지에서 군용기에 올랐다. 네팔의 지진 참사를 돕기 위해 출발하는 것이다. 이날 영국 BBC 카메라엔 눈물이 글썽한 병사의 모습이 잡혔다. 이번 네팔 대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이 이들의 고향인 구르카다. 산 중턱에 위치한 구르카에는 27만 명이 거주하는데, 진원지에 위치해 수소폭탄 20기 폭발에 맞먹는 충격을 받았다.

필자가 구르카 용병을 처음 본 것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다. 북부동맹군과 힌두쿠시 산맥의 산간 마을로 들어갔는데, 마을 사람들이 영국군이 왔다고 전했다. “미군 아니냐”는 질문에, 마을 사람들은 “동양인들”이라 답하는 것이었다. 영국군이 동양인이라고? 이 의문은 영국군을 만나면서 풀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도계 아리안족인 구르카 용병이었다. 아프간 현지인들이 영국군을 동양인으로 여길 정도로 구르카 용병 비중이 높았다. 이들의 상징인 ‘쿠크리 칼’을 뽑아 보라고 했다가 백인 장교에게 야단맞기도 했다. “한번 칼을 뽑으면 피를 볼 때까지 절대 칼집에 넣지 않는다”는 것이 구르카 용병의 신조로, 칼을 뽑으면 자신의 손가락이라도 베야 하기에 함부로 칼을 빼라고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힌두교도인 구르카족은 이슬람을 피해 네팔 산악지대로 이주해 와, 현지 네와르족을 정복하고 1768년 네팔왕국을 건설했다. 이들이 유명해진 것은 영국이 1814년 네팔을 침공하면서부터. 영국은 1만5000명을 잃는 등 엄청나게 고전했다. 산악지대에서 자라 남다른 폐활량과 용맹을 겸비한 구르카족에게 혼난 것이었다. 이에 매료된 영국은 1815년 이들을 영국군에 편입시켰다. 이렇게 해서 올해 200주년을 맞는 구르카 부대가 탄생했다. 구르카 용병은 ‘백병전의 1인자’로 불린다. 한쪽 날이 날카롭게 굽은 ‘쿠크리 칼’의 달인들이기 때문이다.

네팔은 1인당 국민소득 700달러의 최빈국이다. 가장 큰 소득원은 용병 혹은 해외 근로자들의 송금이다. 그다음이 관광이다. 구르카 용병의 평균 연봉은 약 2만4000달러. 그나마 2000년대 중반 다른 영국군과의 차별을 없애면서 대폭 인상된 덕분이다. 구르카 용병은 6·25전쟁 당시 지평리 등 한반도에서 많은 피를 흘렸다. 지금은 약 2만6000명의 네팔 근로자들이 우리 땅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이래서 우리는 이들의 눈물을 외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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