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가 부제인 책은 ‘명문대생들, 엘리트 학생들은 똑똑한 양떼’라는 정의에서 출발한다. “똑똑하고 유능하지만 특권과 환상에 사로잡혀 같은 방향으로 온순하게 걸어가는 무리,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는 알지만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는” 양떼라는 것이다. 저자의 비유가 아니라 예일대 학생의 자기 성찰이다. 2008년 그 역시 아이비리그(컬럼비아대) 출신인 저자가 예일대에서 영문학 강의를 하던 어느 날, 자아성찰은 정신적 삶을 살아가는 핵심적인 조건이며, 자아성찰의 전제는 고독이라고 말하자 학생들 모두 생각에 빠졌다고 한다. 이전까지 이 똑똑한 학생들에게 자아성찰, 고독, 정신적 삶을 생각하라고 요구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상황진단이다. 잠시 후 한 학생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저 똑똑한 양떼에 불과하다는 건가요?”
저자에게도 예일대 학생의 양떼 고백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2008년 이런 내용을 상세하게 담은 ‘엘리트 교육의 허점’이라는 평론을 문학 계간지에 발표했다. 기껏해야 수천 명 정도 읽으려니 생각했는데. 웬걸.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몇 주 만에 10만 명이 읽었고, 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미국 사회를 달궜다. 대학생, 졸업생들로부터 ‘나 역시 양떼’라는 이메일이 쏟아졌다.
책은 이렇게 양떼론에서 시작해 ‘성공 아니면 루저’라는 이분법으로 움직이는 미국 엘리트 교육시스템을 낱낱이 비판하고 그 안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시들어 가는지를 이야기한다.
미국에서 엘리트 학생들은 ‘슈퍼 피플’로 불린다고 한다. 복수 전공을 이수하고, 스포츠에 능숙하며, 악기를 다루고, 외국어를 몇 개씩 구사하며, 지구 저편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취미를 몇 개씩 갖고 있다. 유년시절에 시작한 달리기 시합에서 이긴 이들 최후의 승자들은 부드러운 자신감과 매끄러운 적응력이 무기다.
하지만 예일대 영문과 교수 출신의 현직 문화평론가인 저자는 대학에서 직접 목격한 것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현실은 딴판이라고 했다. 명문대생의 허울을 들추면 거기엔 두려움, 불안, 좌절, 공허함, 목적 없음, 고독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고등학생들도 대학만 들어가면 만사가 풀릴 거라 믿는다. 대학과목 선이수, 대학입학 자격시험 SAT, 과외, 리더십 프로그램, 봉사활동 등 초등학생부터 시작된 끝없는 일과 덕분에 명문대 정문을 통과했지만 정작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모른다. 이에 미국 대학 1학년생의 ‘정서적 만족’ 점수는 지난 25년 중 가장 낮고, 대학생 절반은 절망감을 느끼며, 3분의 1은 우울해 견딜 수 없었다고 대답하고 있다. 한 예일대 학생의 말은 이렇다. “난 불행해. 하지만 내가 불행하지 않았다면 예일대에 들어오지 못했을 거야.”
게다가 이제부터 학점, 사교 클럽, 장학금, 로스쿨 입학, 골드만 삭스 취직 같은 스펙 쌓기의 본격 게임이 시작된다. 대학을 졸업해도 인생은 나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선택폭은 중상류층 전문직에 국한되는‘엘리트의 역설’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실패한 엘리트 교육 시스템은 20세기 초 ‘실력사회’ 움직임의 결과라고 추적한다. 1930년대 대공황 가운데에서 하버드대가 기존의 ‘귀족사회’를 깨고 뛰어난 학생을 뽑기 위해 입학 제도를 바꾸면서 시작된 것이다. 출발은 아름다웠지만, 사립고등학교, 급성장한 사교육, 컨설턴트업, 입시 교육, 대학 입학과정, 명성을 과시하는 대학, 대학의 상업주의, 자녀를 이 시스템에 집어넣으려는 부모들, 나아가 성공을 강요하는 사회까지 결합되면서 폐쇄적 엘리트 교육 시스템으로 굳어졌다.
책은 이 엘리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그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풀어내는데 미국 사회를 괄호로 묶으면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다. 사례를 구체적으로 비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잘못된 엘리트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이것이 국가 시스템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진단에 이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야말로, 엘리트 교육이 낳은 기술관료라고 지적하는 부분에서 클라이맥스에 달한다. 미국 정치·경제·학계 등을 장악한 기술지배 관료들은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도록 훈련받았을 뿐 더 나은 것을 창조하도록 교육받지 못했기에 똑똑하고 재능있고 에너지 넘치지만 개성 없고, 위험을 회피하고 용기도 비전도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 제목은 ‘담대한 희망’이지만, 담대한 건 오직 야망뿐이고, 그 역시 현 시스템의 산물로 주어진 일을 안전하게 실행할 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저자는 현대 사회의 문제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내건 ‘1대 99’가 아니라 10%의 영혼 없는 엘리트 대 엘리트가 되고 싶은 90%의 구도로 이들 엘리트가 정치부터 경제, 사회, 모든 영역을 싹쓸이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저자는 ‘자기극복’을 요구했다. 개인, 학부모, 학교, 정책당국, 엘리트 모두 이 시스템을 인식하고 스스로 극복해 나가자는 것이다. 적나라한 현실 비판에 비해 대안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출발점일 수 있다.
“폐쇄적 세습 계급사회로의 진행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만약 우리가 우아한 사회, 정당한 사회, 현명하고 번영한 사회,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애정으로 공부하고 사람들이 일에 대한 애정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이웃의 아이들을 우리 자신의 아이들처럼 사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귀족사회를 열었다. 우리는 실력사회를 열었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열 시간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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