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폭동’ 美 볼티모어 흑인들 최악의 거주환경사망 그레이도 납중독 고통
임대주택 저가 페인트 원인
“市 3만명 아동 중독 가능성”

집중력 저하·과잉행동 유발
학업 부진에 학교 자퇴 증가
‘범죄율 6배 높인다’ 통계도


미국 볼티모어 폭동사태를 불러일으킨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25)가 평생 납중독에 시달려 고통받았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볼티모어는 물론 미 전역 흑인 빈민층의 열악한 거주환경과 ‘빈곤의 악순환’ 실태에 새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납중독은 집중력 저하, 과잉행동장애 등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납중독 아동의 자퇴율이 비중독 아동에 비해 7배나 높으며, 범죄율은 6배나 높다는 통계도 있다. 출생 직후부터 납에 중독됐던 그레이 역시 집중력 저하로 인한 학업 부진으로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고, 폭행과 마약 복용 등으로 경찰서와 교도소를 들락거렸으며, 제대로 일해본 적이 없어 가난하게 살다가 결국 짧은 생을 마쳐야 했다.

그레이가 태어나 자란 볼티모어의 샌드타운-윈체스터 지역은 납중독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수십 년 전 집주인들이 가난한 흑인을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을 지으면서 값싼 첨가제인 납이 사용된 페인트로 집 안팎을 칠했기 때문이다.

30일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1989년 8월 이곳에서 태어난 그레이는 생후 9개월 때 이미 혈중 납 농도가 1㎗(데시리터)당 10㎍(마이크로그램)이었고, 생후 12개월 때는 30㎍, 22개월 때에는 37㎍이었다. 당시 납중독 기준은 20㎍이었다. 현재 기준은 5㎍이다.

‘아동 납중독 종식을 위한 연맹’의 루스 앤 노튼 대표는 WP와의 인터뷰에서 “1993년 볼티모어에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약 1만3000명의 아동이 납에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금은 3만 명으로 늘어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12년 한 조사에 따르면, 볼티모어 빈민가의 0∼6세 어린이 중 납중독자 비율은 시 평균(약 1%)보다 7배로 많은 7%로 확인됐다. 현지 변호사 사울 커펠만은 WP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0여 년간 납중독 소송만 4000건을 맡았는데 의뢰자의 99.9%가 흑인이었다”고 말했다.

볼티모어시와 메릴랜드주 정부도 납중독의 심각성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주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납중독 피해자는 약 9만3000명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납중독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가난한 흑인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납페인트를 벗겨내고 안전한 새 페인트로 칠할 돈이 없다는 점이다. 시 정부 역시 납페인트 주택들을 철거하고 새로운 주택단지를 개발할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뉴욕타임스는 30일 현지 르포기사에서 볼티모어 빈민가의 수많은 흑인이 현재도 납중독증을 앓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빈곤의 악순환’을 대물림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이 지역 흑인 젊은이들의 건강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인도 젊은이들보다 더 나쁘며,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