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醫·지반공학 전문가 등
1980년대 대학 다닌 40∼50代
해당 분야 오랫동안 지식 축적

다양한 학술자료 쉽게 구하고
출판 문턱 낮아져 잇따라 출간


대학교수도 학자도 아닌 광범위한 학계 밖의 비전문·비전공 학술 연구가들, 이른바 ‘직장인 인문 저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오랫동안 해당 분야의 책을 읽으며 혼자 공부해온 독학자이자 다독가로, 짧게는 수년, 길게는 젊은 시절부터 시작된 수십 년간의 ‘공부 내공’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인문서와 학술서를 내놓고 있다. 직장인들이 자기계발서나 에세이 혹은 서평집 정도를 출간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깊이 있는 본격 인문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달군 중년 공부 트렌드, 직장인 인문 열풍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가장 진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일반인도 학술 정보·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글쓰기가 일상이 된 데다, 낮아진 책 출간 장벽, 중년의 라이프 사이클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로 풀이된다.

◇누가 어떤 책을 냈나 = 이비인후과 개원의 심강현(47) 씨는 지난달 철학입문서 ‘시작하는 철학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궁리)를 출간했다. 철학자의 숲에서 플라톤부터 니체까지 서양 철학의 대가들을 차례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서양 철학사 전체를 재미있고 쉽게 개괄할 수 있도록 했다. 레지던트 2년 차 시절, 저녁 당직 때 책을 읽으며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는 20년 가까이 혼자 읽고, 부족하면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독학’을 했다. 그는 지난해 초고를 궁리를 포함해 몇몇 출판사에 보냈고, 3곳에서 책을 내자는 답을 받았다.

오랫동안 논어를 탐독해온 한방신경 정신과 전문의 김명근(56) 씨도 공자의 가르침이 왜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지, 이기적 관점에서 살핀 ‘이기적 논어 읽기’(개마고원)를 최근 내놨다. 한의대생 시절부터 논어에 빠졌다는 그는 2013년부터 경희대 한방신경정신과 대학원에서 ‘논어를 통한 인간의 이해’ 강의를 진행해온 연구가. 책은 이 강의를 다듬어 묶은 것이다.

앞서 울산 동구청 전산직 공무원인 권성욱(41) 씨는 장제스와 국민 정부, 중국군의 항전사를 담은 916쪽 분량의 방대한 전쟁사 ‘중일전쟁’(미다스북스)을, 지반공학 전문가 김재성(56) 동일기술공사 부사장은 인간 역사를 일군 지하 공간 문명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살펴본 ‘문명과 지하공간’(글항아리)을 내놨다. 지난 10여 년간 이순신을 연구한 김태훈(51) 전국은행연합회 기획조사부장도 지난해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일상이상)를 출간해 영화 ‘명량’ 흥행과 맞물려 화제가 됐다.

◇독학·다독 연구가들 = 이들 일반인 연구가의 공통점은 독학·다독가. 심강현 씨는 지금도 지하철 출근길, 점심시간, 저녁 퇴근 후 책을 읽고 공부한다. 의사 업무와 병행해 공부를 하다 보니 책 읽기와 온라인 강의 중심의 독학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이번에 책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오프라인 철학강의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문명과 지하공간’의 저자 김재성 씨는 지난 수십 년간 연중 한 달을 독서를 위한 안식월로 정해 인문·사회과학 도서를 독파해온 장서가이자 독서가다. 대학 시절부터 전쟁사를 탐구했다는 권성욱 씨의 경우 ‘중일전쟁’을 쓰기 위해 국내외 200편 이상의 책과 논문을 읽었고 집필에만 5년이 걸렸다. 이순신 전문가 김태훈 씨 역시 지난 10여 년간 이순신과 관련된 모든 책은 다 섭렵했다고 했다.

“과거에는 학술 서적이 소수 전문가만의 세계였다면 근래에는 다양한 자료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저 같은 일반인도 학술 서적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권성욱 씨의 말은 비전문 인문학자·학계 밖 전문 연구가 시대의 토대를 설명한다. 김수영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누구나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글쓰기는 일반화되고, 출판 진입 장벽은 낮아지면서 이 같은 필자그룹의 등장이 가능해졌다”며 이와 함께 이들 세대가 출판계에서 갖는 특별한 역할도 의미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1980년대를 전후해 대학을 다닌 40∼50대로, 대학생 시절엔 사회과학서 시장을 열었고, 부모가 된 뒤 1990년대 어린이 책· 청소년 책 시장 활황을 이끌었다. 이어 직장에서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중년 인문 열풍을 이끌었고, 자녀를 키워놓고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마련되자 저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