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 브랜드·명품 옷 쉽게 발견… 인터넷 통제에도 ‘미드’ 즐겨봐
“이란·美 갈등 정부간 문제일 뿐 美제품에 대한 거부감 전혀없다”
지난 4월 24일 찾은 이란 테헤란 최대 전자기기 쇼핑몰 알라엣딘 빌딩, 간판에 애플 로고를 새긴 수십 개 휴대전화 업체들이 황금색으로 도색되거나 큐빅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아이폰을 전시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같은 날 조무리에 위치한 전자기기 거리에서도 인적이 뜸한 오전 시간대 애플 로고 간판을 단 휴대전화 매장 ‘마텔(Mahtel)’에만 유일하게 10여 명의 손님들이 북적였다. 부모님과 함께 아이폰 케이스를 사러 온 캐스트라 사흐미(14)는 “내 친구들은 거의 아이폰을 쓴다”며 “이란과 미국의 갈등은 정부끼리의 문제일 뿐 미국 사람들이나 물건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매장에서 파는 16G 용량의 아이폰6 가격은 2450만 리얄(약 80만2000원)로 상당수 중산층의 한 달 월급을 웃도는 수준이지만 단일 모델 판매량으로는 아이폰이 으뜸이라는 것이 직원의 설명이다.
이란에는 아이폰을 공식적으로 수입하는 기관이 없다. 아이폰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다 보니 이란 수입업자들이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변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폰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다. 이는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아니지만 한편에서는 이라크 등 주변국에서 휴대전화를 밀수해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마텔 매장 매니저인 아민 젤릴란드(25)는 “우리처럼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아이폰을 파는 곳은 5%도 안 되고 나머지 95%는 대부분 보따리상들이 몰래 들여온 아이폰을 불법적으로 판 거라고 보면 된다”며 “아이폰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있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폰을 파는 곳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반미국가’라는 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나라다. 이란과 미국의 관계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과 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억류사건을 거치며 파국으로 치달았지만, 실제 이란 국민들의 일상은 정부의 입장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이란 현지는 이미 서구화가 상당 부분 진행돼 있었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미국 등 서구 브랜드 제품을 즐기며 문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언론에는 잘 드러나지 않은 이란의 진짜 얼굴이다. 이날 찾은 테헤란 타즈리시 등 번화가에서는 나이키,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아베크롬비, 타미힐피거 등 서구 브랜드 옷을 입은 젊은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택시기사는 이란에 맥도날드를 모방한 매쉬도날드나 KFC를 흉내 낸 SFC, ZFC 등의 패스트푸드점이 있다며 “정부의 단속이 잘 미치지 않는 이스파한 등 지방으로 갈수록 이러한 가게들이 성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부 쇼핑몰이나 시장에는 명품 브랜드를 본뜬 ‘짝퉁’ 가방이나 액세서리들을 팔고 있다. 지난 4월 22일 테헤란 최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에서는 샤넬 로고가 그려진 스카프를 머리에 쓴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이란에서는 ‘부자 동네’로 불리는 테헤란 북쪽으로 갈수록 에르메스, 펜디 등 고가의 서구 명품 브랜드 매장을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란 정부는 반체제적이거나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서구 문물이 이란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한 인터넷 통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현지 청년들은 암암리에 미국 문화 상품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메신저 접속을 주기적으로 차단해 왔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자국 내 인터넷 사용자의 신원을 접속과 동시에 확인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4월 21일 테헤란대 인근 카페에서 만난 네 명의 대학생 탄냐스(21), 마리아(21), 아터(21), 시나(20)에게 최근에 본 미국 드라마나 영화 제목을 물었더니 곧바로 ‘007 카지노 로열’ ‘로스트’ ‘뱀파이어 키스’ 등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들은 인터넷 우회로를 통해 금지 웹사이트에 접속, 영상들을 내려받곤 한다며 “불법이라는 걸 알지만 모두 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구 문화는 자유롭고 독특하다. 이란 사람들이 서구 문물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히려 반대”라고 말했다.
서방의 각종 경제제재로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이란에서 철수한 뒤 빈자리는 중국 기업들이 메워 가고 있다. 한국 기아 프라이드 자동차와 프랑스 푸조 자동차 일색이었던 테헤란 도로에는 JAC, MVM, LIFAN 등 중국산 자동차들이 몇 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특히 의류, 신발 등은 중국산이 거리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다.
4월 22일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에서 만난 한 남성은 아동복가게를 가리키며 “옷이나 신발 중에 상표가 없거나 제조사가 안 적혀 있는 건 다 중국에서 온 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이란 국민들 사이에서는 중국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포착할 수 있다. 서방 제재로 이란에 중국 물품이 대량 들어오면서 그 존재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저질 제품도 많아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핵협상이 최종 타결돼 기존에 수입되지 않던 서구 브랜드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통역 일을 하는 모스타파 자항기리는 “이란에서는 아직도 휴지를 미국 브랜드인 크리넥스로 부르고, 의류 세탁용 세제도 미국 브랜드 타이드의 이름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란에서는 제재 전에 들어왔던 미국 물품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또 이슬람혁명 이전 시대를 경험한 중장년층은 미국에서 각종 물품이 자유롭게 수입되던 과거에 향수를 느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상공회의소 부소장인 페드람 솔타니(46) 역시 대이란 제재가 해제되면 이란 시장에 가장 많이 눈독을 들이는 업체들은 유럽이 아닌 미국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란에 투자 경험이 있는 미국 기업들이 과거 노하우를 살려 이란에서 길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테헤란 = 글·사진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 지난 4월 22∼24일 취재 중 방문한 조무리 가전제품 거리의 휴대전화 매장 ‘마텔(Mahtel)’점. 큼직한 애플 로고가 눈에 띈다. 샤넬 로고가 그려진 스카프를 머리에 쓴 이란 여성들이 최대 시장 그랜드 바자르를 걸어가고 있다. 최대 전자기기 쇼핑몰 알라엣딘 빌딩에서 휴대전화 액세서리업체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의 ‘좋아요’ 표시를 간판에 내걸고 손님을 맞고 있다. (위쪽 사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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