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못하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중증장애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느냐고요? 수업 시간에 저와 눈을 맞추려 애를 쓰고, 제가 하는 말 한마디에 활짝 웃는 학생들을 한 번이라도 본 분들은 그런 질문을 못할 겁니다. 아이들은 눈빛과 웃음으로 저에게 배우는 게 즐겁다고 늘 말하고 있습니다.”
4일 경기 광주시 초월읍 신수리 한사랑학교에서 만난 허영신(49) 교사는 지난 1988년부터 특수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27년 차 베테랑 특수 교사다. 허 교사는 2003년부터는 중증장애 학생들이 공부하는 한사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허 교사는 한사랑학교 내에서도 열정이 남다른 교사로 이름나 있다. 그는 일반 학교 교사들도 꺼리는 학급 담임 업무를 10년째 맡고 있다. 현재 허 교사의 반에는 뇌병변 1급장애 학생 3명과 시각장애와 지체장애, 행동장애를 동시에 앓고 있는 학생 1명이 공부하고 있다. 시각장애 등을 앓고 있는 김민준(가명·12) 군은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아 사소한 외부 자극에도 두려움을 느낀다. 또 의도한 바가 상대방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등의 방식으로 자해를 해서 세심한 관찰과 관리가 필요하다. 뇌수종(뇌 안쪽 뇌척수액 고이는 공간이 부풀어 오르는 질병)으로 뇌변병 1급장애를 앓고 있는 신정은(가명·여·20) 씨는 앉아 있을 수조차 없어 환자용 침상에 누워 수업을 받는다.
허 교사는 오전 8시 40분에 출근해 학교 일과가 끝나는 4시 40분까지 4명의 학생에게 수업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소변이 묻은 기저귀를 갈고 식사를 돕는다. 입으로 식사할 수 없어 장과 연결된 관으로 식사하는 정은 씨를 돕는 것도 허 교사의 몫이다. 허 교사는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병에 걸릴 수 있는 학생들을 위해 체온 조절을 해주고, 욕창(병으로 오랜 시간을 누워 지내는 환자의 엉덩이나 등에 생기는 궤양)이 생기지 않게 자세를 바꿔주는 일도 맡아 하고 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 종종거리다 보면 8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며 “치마를 입거나 구두를 신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고 말했다.
8시간 동안 4명의 중증장애 학생들을 돌보면 지칠 법도 하지만 허 교사는 일과가 끝난 후에도 학생들 걱정에 퇴근하지 못한다. 허 교사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도 갈 곳이 없거나 졸업을 하고도 장애인 시설에 우두커니 머무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2011년부터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허 교사의 이 같은 열정 덕에 자원봉사자가 산책을 시켜주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장애인 시설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 장애 학생들은 허 교사가 마련한 방과후 교실에서 또래 학생들과 운동을 하거나 보드게임을 하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허 교사는 방과후 교실을 마친 학생들을 일일이 집에 바래다준 후에야 일과를 마친다.
허 교사는 “방과후 학교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면 집인 서울 광진구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10시가 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다”며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나에게는 마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허 교사는 방과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보치아(휠체어에 앉아 공을 굴려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이기는 경기)를 가르쳐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 출전시키기도 했다. 또 허 교사는 부모가 없거나 가난한 장애 학생들에게는 월급을 털어 학생들의 팔다리가 되어줄 보조기와 휠체어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열정이 남다른 허 교사도 특수학교 교사로서 회의를 느껴 그만둘까 고민한 순간이 있었다. 그는 “한사랑학교에서 중증장애 학생들을 처음 만난 후 5년 동안은 반응이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허 교사는 “장애가 심해 글을 가르칠 수도 없고 나의 물음에 대답할 수도 없는 학생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괴로워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허 교사는 중증장애 학생들과 마음껏 소통할 수 있는 교사가 됐다. 허 교사는 “중증장애가 있는 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활짝 웃고 나와 눈을 마주칠 때, 내 손길에 환한 웃음으로 답해올 때 백 마디 말보다도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좀 더 많은 장애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허 교사는 “많은 특수학교가 자금난으로 교육청으로부터 허가를 받고도 학교를 짓지 못해 더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재직하고 있는 한사랑학교도 자금 부족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허 교사는 “장애가 있는 자녀와 집 안에 갇혀 지내다 우울증으로 동반자살을 하는 부모들이 많은 비극적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특수학교가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장애 학생들이 교육받아야 한다”며 “장애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배우고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광주=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